[기고]문해력이 요구되는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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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KERI 책임연구원

공학뿐만 아니라 언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관련 기사에 자주 눈이 간다. 최근에는 청소년 세대 '문해력' 관련 문제가 대두되면서 문해력 증진을 위한 수업이나 학원 강좌 광고가 부쩍 늘어났음을 알게 됐다.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글을 올바르게 읽는 면과 글에 포함된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문해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맞춤법이야 틀릴 수 있어도 설마 단어를 이해하지 못할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문해력 논란을 일으킨 예를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심심(甚深)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를 '미안하다는 말 앞에 심심하다는 표현은 장난치는 것이냐'라거나 '예정대로 금일(今日) 면접을 진행합니다'라는 문자에 '금요일 면접 장소에 갔다가 낭패를 봤다'는 사례는 단순히 웃고 넘기기가 어렵다.

이들 사례는 '뒷좌석'을 '뒷자석', '어이'를 '어의'(御醫 또는 語義) 등으로 잘못 쓰지만 그 뜻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단어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의 척도인 어휘력은 올바르게 쓰고 말할 수 있는 표현 영역과 올바르게 듣고 읽을 수 있는 이해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뒷자석'과 '어의'는 표현 영역, '심심(甚深)한'과 '금일(今日)'은 이해 영역 문제다.

표현 영역 문제는 듣거나 읽는 상대방이 적절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해 영역 문제는 판단을 잘못하고, 즉 오판하고 다음 행동으로 이어져서 더 큰 문제를 불러올 확률이 높다. 입시나 취업 면접을 보는 학생이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의 준말로 오해하면 합격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연구자는 연구개발(R&D) 과제 수행 과정에서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서와 보고서는 R&D 과제 선정 및 평가에 중요한 근거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시스템 개발'이라는 R&D 과제 제목은 보는 사람에 따라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장치의 성능을 검증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꽤 오래 전부터 '정량적(定量的) 목표'와 '정성적(定性的) 목표'를 구분한 성과지표가 도입됐다. 개발 목표를 수치로 나타내거나 그 의의(意義)를 서술하는 것이다.

목표를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의의를 서술하려면 창작의 고통이 따른다. 개발 목표와 결과가 어떤 의미 및 가치가 있고,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낳을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세계 최초' '세계 최고' '국내 최초' '국내 최고'라는 정성적 표현이 많이 쓰였다. 이러한 표현은 얼핏 괜찮아 보이지만 입증하기는 만만치 않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R&D 결과를 모두 찾아서 비교했지만 우리 결과물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표현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이들 표현에 대한 평가와 시각도 어느 정도 정리되고 굳어진 듯하다.

문해력이 요구되는 이 시기에 연구개발자들은 진취적·도전적 과제에 대해 더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서 그 의의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과제 선정 및 평가자는 그 표현에 담긴 뜻을 적절히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우리 연구계와 시민사회 모두 단어 및 문장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 담으려 한 뜻과 가치를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는 문해력 수용 문화가 자리 잡길 기대한다.

김영선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 yskim@ke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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