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 바름과 그름, 공과 과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정책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도 바름과 그름에 대한 근본적 시각 차이를 만든다. 어떤 누군가는 반대할 정책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전문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잣대가 아예 서로 다르다면 지식은 진실을 가리는 차안대(遮眼帶)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는 종종 너무나 다른 가치관과 판단 논리를 접하게 된다. 누군가의 생각을 비평하자는 게 아니다. 단지 정책이 이런 생각의 차이에 휘청이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적 진실성과 증거에 기반한 정책 기조 정착에서 시작해야 한다.
증거 기반 정책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미국 의회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 과학적 진실성 확보를 위한 원칙 개발을 권고한다. 이듬해 정책실은 지침에 관한 각서를 각 연방과학기관에 발송한다.
뒤이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과학적 진실성에 관한 권장 사항과 지침의 기초가 마련됐고, 부처별로 관련 정책 마련 및 적용이 시작된다. 그리고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과학적 진실성 및 증거 기반 정책 수립을 통한 정부 신뢰 회복에 관한 교서를 발표한다. 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각서를 재확인 및 상기하고 가용한 최선의 과학기술과 전문지식, 데이터 등 증거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행정부의 정책적 책임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정을 보면 증거 기반 정책이 민감한 주제를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 다들 떠올릴 수 있는 에너지나 기후 관련 정책이 과학적 진실성이나 증거 기반 정책과 교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들 사안은 개인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과학적 진실성과 증거에 기반한 정책이 당면한 과제가 됐다.
거기다 증거 기반 정책이 이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근거가 빈약한 정책 결정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나고, 잘못된 정보로 우리 사회는 갈라서고 갈등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많다. 그동안 어떻게 증거 기반 정책 기조가 이행되지 못하고 멈추고, 심지어 훼손되었는지부터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픈 과거를 한번 돌아보게 될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이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는지도 따져보아야만 한다. 어떤 경우는 순전한 실수일 수도 있다. 다른 경우는 단지 그런 과학적 정보와 데이터가 있는지 몰랐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혹 거기에 오용과 왜곡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증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학연구 과정이든 이것을 인용해서 정책을 기획하거나 집행하는 과정이든 문제를 걸러 낼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고, 이걸 담보할 수 있는 법제화도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성과 증거 기반 정책 관점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정책을 다루는 합리적이고 합의된 기준이 필요하다. 정책이 기획되는 단계에서 시행하고 그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까지 새로운 절차가 마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책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모든 사람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 모두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왜냐하면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의 피해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해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