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채굴에 활용되던 그래픽카드가 대거 중고시장에 등장했다. 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 이더리움이 지난 15일 머지 업그레이드를 기점으로 합의 프로토콜을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로 전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고나라를 포함한 국내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채굴 중고' 태그가 붙은 'RTX3070' 'RTX3080' 등 그래픽카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채굴 중고 표기를 하지 않은 30시리즈 상당수도 실제로는 채굴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머지 업그레이드로 말미암은 이더리움 가격 상승 기대심리 등으로 대기하던 사업자가 최종 시점까지 채굴을 진행하다가 시장에 매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싼 가격에 그래픽카드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채굴 GPU가 애프터서비스(AS)나 게임 구동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 RTX 3060 신제품의 경우 다나와 최저가가 45만원대에 형성돼 있는 가운데 같은 모델 A급 중고의 경우 30만원 이하에 가격대여서 구매 이점이 있다.
이더리움은 GPU를 활용한 채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해 왔다. 이더리움의 합의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이 직접 프로세서나 그래픽카드(GPU), 맞춤형 반도체를 동원해 연산 처리 시 보상으로 이더리움(ETH)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비트프로컨설팅 등에 따르면 이더리움 채굴업자는 2020년 말부터 올해 5월까지 근 1년 반 동안 그래픽카드 구매에만 약 150억달러를 썼다. 이는 이더리움 시세가 지속 상승하면서 채굴 난도에 비해 수익 상승률이 더 컸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기준 약 15만원에 불과하던 1ETH는 지난해 11월 강세장에서 약 548만원에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더리움이 PoS로의 전환을 단행하면서 채굴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대다수 사업자는 채굴 사업을 중단하는 선택을 내놓고 있다. 이더리움클래식(ETC), 레이븐(RVN) 등 대안 코인의 수익성이 이더리움에 미치지 못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이더리움 마이닝풀을 보유한 채굴업체 '이더마인' 역시 15일 새벽을 기해 이더리움 채굴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는 PoS에 기반한 스테이킹 풀 서비스에 전념할 계획이다.
GPU 신제품 가격도 지난해 코인 강세장과 비교해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수급난으로 90만원까지 가격이 폭등한 제품은 대부분 50만원 이하로 제 가격을 찾았다. 추가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판매업자들이 창고에 쟁여 놓은 상품들이 점점 시장으로 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채굴업계 관계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동되던 코인 채굴공장도 일단 채굴을 중단한 상태”라면서 “채굴업자가 시장에 중고 GPU를 대거 공급함에 따라 신제품과의 경쟁이 심화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