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축 고층 아파트로 이사온 후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서 고생했다. 입주민 사이에서 유사한 불만이 쇄도해 사정을 알아보니 수천 가구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 전체가 전파 음영 지역인 것이 원인이었다. 아파트 고층부에서 무선통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옥상에 이동통신 중계장치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 설치를 진행하려면 아파트 입주민 협의체와 통신사 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입주가 진행되고 있는 단지는 협의체 자체가 구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협의할 당사자가 없다는 점이다.
중계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구당 통신비로 수십만원을 들이면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전파 음영 지역은 위약금 면제 사유도 아니기 때문에 서비스를 끊거나 바꾸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통신비를 계속 내야 한다.
이 문제는 협의체 구성 이후에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입주민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옥상층 입주민의 경우 중계기가 방출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설치를 반대할 수 있다. 이 경우 설치를 강제할 수 없어 사실상 입주민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통신사가 다를 경우 각 입주민이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가 다른 것도 문제다.
중계기 설치 갈등은 최근 신축 아파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일부 입주민들의 전자파에 대한 비과학적 거부감에 따른 영향이 크다. 중계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가 백혈병이나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수차례 실험을 통해 이를 반박하고 있지만 과거 '선풍기 괴담'(선풍기를 틀고 자면 사망할 수 있다는 소문)처럼 해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연찮게 선풍기는 최근 다른 괴담에 휘말렸다. 손에 들거나 목에 걸 수 있는 휴대용 선풍기에서 전자파가 과도하게 발생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소비자 불안이 커지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직접 실험,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모두 인체 보호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풍수지리나 사주팔자 등은 사람의 판단력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빨간색으로 이름 쓰기를 꺼리게 한다. 전자파에 대한 비과학적 우려가 사라지려면 몇 세대는 더 흘러가야 할지도 모른다. 일부 통신사가 제한적이나마 '와이파이 콜링'(VoWiFi) 도입을 통해 해법을 찾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셀룰러 망을 통해 제공되는 전화가 끊길 경우 이를 와이파이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다른 통신사들 역시 중계기 문제에 대해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고층건물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에 더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