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요구 파악 필요성 크지만 담당자 따라 결과물 천차만별
마케팅·상품기획 업무서도 최소한의 데이터 분석 역량 필요
AI·XR 등 디지털 기술 바탕 경쟁사보다 빠르게 대응해야

고객 경험이 화두인 시대다. 산업계, 학계, 언론, 고객까지 모두가 고객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시장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은 이제 부서 명칭뿐만 아니라 사업부 명칭에도 고객 경험 단어를 넣어 변경할 정도로 고객 경험은 핵심 화두가 됐다. 수년 사이 등장한 인상 깊은 고객 경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온라인 주문 후 당일 배송과 같이 한 번 경험하면 경험이 기준이 돼 다시는 이전으로 회귀할 수 없는 수준의 고객 경험 혁신에서 커피 매장 방문 전에 모바일 앱으로 사전 주문과 같은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경험 개선까지 다양한 성공 사례가 있었다. 제품·서비스를 설계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는 수익과 성장에서 성패가 갈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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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수 LG전자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부사장

그렇다면 고객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이 구매 또는 사용 시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도록 하려면 우선 그들의 필요나 바람, 즉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을 이해해야 한다. 고객은 어떤 상황과 이유에서 흔히 맥락이라 일컬어지는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어떤 추가적인 필요를 원하고 일상에서 어떤 바람이 있는지 등 고객을 관찰하고 이해해야만 새로운 경험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런데 고객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심층 인터뷰도 진행하고 이들을 따라다니며 관찰해도, 심지어는 주거 가정과 방문 매장에 관찰 장비까지 설치해서 모니터링해도 고객의 깊은 속마음과 고객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니즈를 파악해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고객 조사 담당자의 주관이 개입된 관찰이나 해석을 통해 진행되고, 담당자 역량에 따라 도출된 인사이트의 폭과 깊이에 차이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보니 의사 결정자를 설득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마케팅 조사 방법론은 발전을 거듭해서 마케팅·상품기획 담당자들의 역량도 높아졌다. 또 마케팅 조사 전문기관까지 활용하고 있지만 고객 이해에서 이것만으론 여전히 충분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데이터는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좋은 보완재가 된다. 데이터 기반의 고객 이해 접근 방식은 담당자 주관과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인사이트가 아니라 데이터가 더해져서 더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설득력 또한 더욱 높아지는 실무적 장점도 있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과 서비스는 유무선 통신망과 연결된 경우도 많아서 고객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통신망 연결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세대의 고객들이 디지털 미디어에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느낌이나 의견을 활발하게 남기고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데이터를 통해 고객을 이해할 공산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많은 기업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볼 때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구성원들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시각과 역량이 부족하다. 리더와 실무자들이 여전히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 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들부터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는 시각과 역량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가가 아니어도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고 어느 정도 수준의 분석은 할 줄 알아야 고객을 이해해서 혁신적인 고객 경험을 설계할 기업 토양을 다질 수 있다. 하지만 마케팅이나 상품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많은 임직원이 여전히 기존의 고객 조사 방법론만 고수한 채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둘째로 명확한 고객 경험에 대한 정의 없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기업의 고객 데이터는 제공하려는 고객 경험에 대한 구체적인 가설, 목적 없이 수집된 데이터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단 이들을 모아 열심히 분석해 보면 의미 있는 인사이트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도출된 인사이트는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성(What)은 볼 수 있겠지만 그 상황과 이유(Why)는 알 수 없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어떠한 고객 경험을 설계해야겠다는 시각(How)을 얻기란 더더욱 어렵다. 많은 실무자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고객 데이터는 이만큼인데 이걸 분석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고객 경험엔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이는 정확한 접근 방식이 아니다. 제공하려는 경험이 명확하지 않은 채 목적 없이 수집된 데이터에서 시작하는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 고객 이해 및 경험 설계 담당자와 데이터 분석가 간 협업이 부족하다. 같은 데이터로도 분석가의 관점에 따라 분석 방법과 도출되는 인사이트의 폭 및 깊이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분석가가 업(業)에 대한 이해 없이 관성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그렇게 도출된 인사이트는 활용되기가 어렵다. 고객의 이해와 경험 설계 역할 능력이 있는 현업 전문가와 분석 전문가 간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협업이 없으면 분석 전문가는 본인의 느낌과 역량 이내에서 적당히 추측하고 분석할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는 원인이 해소된다면 데이터는 기존 고객 조사 방법의 한계를 보완해서 고객을 이해하고 새로운 경험 설계로 이끌 잠재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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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고객 경험 시대에서의 데이터의 역할 세 가지를 정의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을 제언해 본다. 첫째 데이터는 고객 경험 설계의 시작을 지원하는 역할(Trigger)을 한다. 이에 제공하려는 고객 경험을 먼저 정의한 후 이를 위해선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일부 없다면 어떻게 확보할지, 내부의 타 조직에 사일로(Silo)화 돼 있는 데이터를 연결해 볼 것인지, 외부 기업과 데이터 제휴로 확보할 것인지와 같은 접근 방식을 통해 데이터를 모아서 고객의 이해를 최대한 높이도록 노력하자. 고객 이해 노력과 함께 조직의 창의성이 결합할 때 수준 높은 고객 경험은 설계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데이터는 기획된 고객 경험이 구현되도록 하는 역할(Enabler)을 한다. 고객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데이터의 생성과 상호 연결·처리가 수반되며,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나 확장 현실 등 요구되는 디지털 요소 기술 또한 이네이블러에 포함되는데 이를 경쟁사보다 빠르게 센싱하고 적용하는 역량을 높이도록 하자. 고객 경험 구현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요소 기술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시장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빠르게 센싱해서 적용하는 실행력은 고객 경험 출시 리드타임 단축을 가능케 할 것이다.

셋째 데이터는 고객 경험을 검증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Tracer)을 한다. 그러므로 고객 이해를 통해 고객 경험이 설계돼 제공된 후 의도한 고객 경험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과 모니터링을 위한 데이터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활용하도록 하자. 이는 제공한 고객 경험을 더욱 좋게 개선하거나 또 다른 신규 고객 경험, 심지어 새로운 비즈니스로까지 확장할 기회를 포착하게 해 줄 것이다. 이와 같이 데이터 기반의 고객 경험 설계와 피드백 루프 활용 간 선순환 체계 구축은 새로운 경험 제공의 지속 가능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고객 경험 혁신을 위한 고객 이해와 고객 경험 설계에 있어 데이터의 활용과 고객 경험 확장 계획이 초기부터 함께 고민돼 기획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자 최고 수준의 운영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시장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에 있어 이상과 같은 선순환 사이클을 돌릴 수 있는가, 경쟁사보다 얼마나 빨리 돌릴 수 있는가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삼수 LG전자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부사장) sam.Lee@lg.com

<필자소개>

이삼수 부사장은…

LG전자에 입사해 LG그룹 내 여러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은 전략 전문가다. LG전자에서는 스마트비즈니스 전략, 기술전략, 사업전략 등 다양한 전략 분야를 담당했다. LG유플러스에서는 콘텐츠 및 서비스 사업을 담당했다. 2019년 LG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및 그룹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 대표를 역임했다. 2021년 LG전자로 복귀해 CDO로서 디지털전환 가속화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