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산업 소외론'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금융 홀대론이 지배했는데 이번 정부도 또 다른 형태의 소외론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론 주요 금융 공공기관장 공석 기간이 길어지면서 소외론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장은 방문규 행장이 국무조정실장으로 이동하면서 공석 상태다. 윤대희 이사장이 임기를 마친 신용보증기금은 이사장 모집 공고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수은 행장, 신보 이사장은 조직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금융권에선 요직으로 불리는 자리 중 하나다.
조직의 수장은 아니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공석도 길어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 금통위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임기 4년이 보장되는 금통위원은 차관급이지만 명예직으로 인식된다. 연봉 3억원에 업무 추진비 등을 포함하면 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리가 지난달 임지원 금통위원이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마평도 나오지 않고 있다. 임 전 금통위원 자리는 은행연합회 추천 몫인데 현 정부와 조율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달 예정된 금통위 회의 전까지 새 금통위원이 오기는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현 정부에서 검찰 출신이나 정치인이 갈 자리를 먼저 챙기다 보니 “금융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권에는 너무 무신경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특히 금융회사를 검사 감독하는 자리인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부임하고 국회의원 출신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임명되면서 소외론에 기름을 부었다.
경제·금융 관료가 독식하던 고위공직, 공공기관장 자리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이들이 오면 신선한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금융권 걱정은 전 정부 때와 비슷하다.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로 나아가야 하는 금융산업을 정부가 또다시 육성보단 관치 대상으로 보고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다.
벌써 '신(新)관치금융'에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이복현 원장이 은행장과 간담회에서 한 말 때문이다. 그는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따른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이자 장사'를 지적했다. 같은 날 윤 대통령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공조를 위한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감원장의 막강한 힘을 금융권이 확인한 장면이다. 이번 정부도 이전 정부처럼 '금융사는 앉아서 돈 번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