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19>디자인드 바이, 크리에이티드 바이

포트 와인. 식후 이것 한잔이면 기분은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전해오는 얘기로 태생은 백년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전 후 프랑스 와인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찾은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긴 했다.

무덥고 습한 가운데 항해 도중 와인은 상하기 쉬웠다.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은 브랜디를 섞어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도수를 높인 와인은 항해를 잘 버텨 내고 런던항에 도착한다. '포트'란 명칭은 수출항이던 오포르토(Oporto)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공교롭게 포르투갈어로 포르토(Porto)가 항구란 뜻이라니 자연스레 영어식 포트가 되지 않았나 한다.

혁신은 공간의 산물이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혁신에는 꼬리표가 달린다. '메이드 인 어디'란 태그는 혁신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식과 기술이 브랜드가 되는 제품엔 다른 착안도 해 봄 직하다. 여기 잘 알려진 사례가 하나 있다.

2009년 6월 말 소비자들은 첫 아이폰을 받아든다. 그리고 뒷면에 뭔가 깨알 같은 크기로 적힌 뭔가를 보게 된다. 문구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애플사에서 디자인되고 중국에서 조립되었습니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by Chin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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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를 본 순간 마음들은 복잡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속은 느낌이었겠고, 애플이 디자인했다는 점에 다른 감정도 찾아들었을 것이다. 이 혁신제품에 누군가 시그니처를 남겨야 한다면 그건 애플일 테니 통상의 '메이드 인 어디'란 표현을 쓰지 않은 데는 제법 나름의 논리도 있겠다.

뭔가가 만들어진 공간은 종종 출신처럼 여겨지고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샴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Reggiano)는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의 다섯 지역산 치즈에만 쓸 수 있는 용어였다.

누군가는 이런 기원(provenance)이 만드는 차별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다. 자칫 경쟁에서 기존 브랜드를 절연시키고, 새 제품은 품질이 그만 못하다는 고정 관념을 조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업들은 브랜드를 만드는 지난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일본 기업과 우리 기업은 이 긴 여정을 마치고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례다.

그럼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물론 브랜드를 잘 보호하는 데 있다. 어떤 기업은 소량의 재료만 공급하고 제조는 거의 안 해도 자신의 표식을 제품에 꿰매고 붙이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방법도 있으리란 걸 느낀다.

코로나 맥주는 초창기에 기존 브랜드에 멕시코산이라고 조롱받고 루머로도 고생한다. 코로나는 자신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만들어 낸다. '에초 엔 메히코'(hecho en Mexico)는 태양과 해변을 떠올리게 하고, 이 이미지는 멕시코 캉쿤이든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이든 프랑스 리비에라 해변이든 공유되는 동질의 브랜드 스토리로 만들었다.

혁신 브랜드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아마도 그것은 누가 제조했다는 것 대신 '디자인드 바이'나 '크리에이티드 바이'로 구분되는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뒤에 적은 “메이드 인 어디”는 누가 그 과정에 참여했는지 부연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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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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