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취재를 담당할 때 일이다.
'1위 팀'과 '최하위' 팀이 중요한 순간에 맞붙었다. 1위 팀은 연승 중이었고 최하위 팀은 연패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우세가 점쳐졌던 1위 팀은 이상하리만큼 그날 고전을 거듭했다. 3점슛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고 이른바 '에이스' 활약으로 대등한 수준을 겨우 유지할 뿐이었다. 승부는 결국 4쿼터에 갈렸다. 1위 팀의 집중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강한 수비와 체력으로 승부처에서 중요한 득점에 성공했다. 반면 최하위 팀은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이 떨어졌고 잇따른 실책으로 패배를 안았다. 결국 1위 팀의 승리와 연승. 최하위 팀의 패배와 연패였다.
그러나 경기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1위 팀 벤치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승리팀 감독은 자신들이 부족했다며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3쿼터까지의 졸전 때문이었다. 승리팀 수훈갑으로 인터뷰장을 찾은 선수 역시 자신들이 강하지 않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 팀은 승리했지만 결국 다음 날 특훈까지 소화했다. 반면 패한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3쿼터까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위안을 삼았다. 이들은 “졌지만 잘 싸웠다”며 스스로를 위안했고 쉴 수 있는 '휴가'를 달라고 외쳤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와 6·1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했다. 지난해까지 열린 4·7 재보궐선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3연패다.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된 반성이 들리지 않는다. “판이 어려웠다”거나 “대선에서 진 정당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는 핑계만 들린다. '네 탓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인사들에게 책임을 몰아주기에 바쁘다.
이는 대선 직후 민주당의 분위기와도 다르다. 대선 직후 민주당은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가 대세였다. 졌잘싸의 마법 때문인지 민주당은 대선 직후 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채 지방선거를 치렀다. 표면적 이유는 시간부족이었지만 그 핵심은 졌잘싸였다.
졌잘싸에 고무됐던 탓인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유독 '자기 사람 밀어 넣기'가 심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한 지역구에서는 모 국회의원의 비서관이던 인물이 해당 지역구의 구청장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후 재심에서 결정이 번복됐고 당원 투표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본선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 지역구에서 겨우 약 700표 차의 승리를 가져갔다. 공교롭게도 해당 의원은 지금 다양한 인물의 책임론을 외치고 다닌다.
청년 우선 공천 지역구로 선정된 모 지역구 시의원선거에서는 몇 년 전부터 활동하던 청년 대신 이른바 청와대 출신을 밀어 넣었다. 청와대 출신 인물은 해당 지역구의 의원 측의 도움으로 경선을 뚫었지만 본선에서 국민의힘 후보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 서울권의 얘기다. 민주당의 서울 패배는 송영길 전 대표 단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다양한 의원모임을 통해 반성과 쇄신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졌잘싸에 대한 반성이 없다. 민주당 국회의원·지역위원장들이 순리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위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