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일하는 방법의 혁신, DX for Company

지난 2월 기고에서 레거시 기업이 성공적으로 DX를 추진하려면 사업적 중요도가 크고, 기술적으로도 해결 가능한 과제, 소위 '손을 뻗으면 얻을 수 있게 낮게 달린 과일(The lowest hanging fruit, 이하 유망 과제)' 찾기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유망 과제 탐색 시 필자는 DX for Company와 DX for Customer 시각으로 영역을 나누어 탐색하라는 조언을 한다. 이때 DX for Company는 일하는 방법의 혁신을, DX for Customer는 고객 경험의 혁신을 의미하는데, 유망 과제는 특히 DX for Company 영역에서 비교적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업력이 오래된 레거시 기업일수록 기업 내 가치사슬이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으로 고착화돼 있고, 이미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도 존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개발, 제조, 구매, 품질, SCM 등 모든 가치사슬 영역에서의 일하는 방식이 오랜 기간 관성화되어 있거나, 일상적이고 점진적인 개선 활동만 있어 왔다면, 잠자고 있던 데이터에 빅데이터 분석과 AI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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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수 LG전자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부사장

당사도 DX for Customer 뿐만 아니라 DX for Company 에서도 다양한 시도와 성과가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대로, 당사의 창원 스마트 공장이 세계경제포럼(The World Economic Forum)에서 등대 공장(Lighthouse Factory)으로 선정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경제포럼은 전세계 제조공장 중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AI와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들을 도입해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한 곳을 선정해 오고 있는데, 당사의 스마트 공장은 흔히 일컫는 공장 자동화에 그치지 않고, 공장과 생산 라인에서 수집되는 수많은 데이터들의 분석과 예측을 통해 지능화 수준까지 달성한 공장이다.

일부를 소개하면 본 스마트 공장은 30초마다 공장과 생산 라인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10분 뒤의 상황을 예측해 필요 자재를 적시에 투입하며, 지능형 무인 창고는 자재 재고를 실시간 파악해 부족 시 스스로 추가 공급을 요청한다. 또한 전용 5G 통신망 기반의 물류 로봇들이 공장 곳곳을 이동하며 주요 부품 자재들이 담긴 적재함을 최적 경로로 자동 운반 해준다. 나아가 빅데이터 분석과 AI 예측을 통해 생산 중인 제품의 불량 가능성과 생산라인의 설비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선제적인 대응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당사 스마트 공장 사례는 20%의 생산성 향상, 작업자 업무 효율 증대 및 불량률을 크게 개선한 제조 DX, 품질 DX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사례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이번 성과가 전후방 가치사슬의 영역, 즉 자재 조달과 제품 운송 SCM 계획, 구매 계획, 판매 계획 등 연관 영역의 DX를 촉진시킬 발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당사 비즈니스 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불러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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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DX도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이슈로 인해 그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는 영역인데, 당사는 구매 DX 과제를 통해 필수 원재료와 부품의 가격 및 공급 변동성을 예측하고, 구매 담당자가 개인의 감(感)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인 가이드를 바탕으로 공급 협력사 사전 협상 등 선행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능화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담당자 역량 여부에 의존해온 시황 모니터링과 예측, 시나리오 대응 관리 기법이 이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보다 손쉽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품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개발 영역 DX 과제로 타 계열사 사례를 소개 하면, LG그룹 내 생명과학 사업분야에서는 개발 DX를 통해 연구단계에서 약 4년간 난항을 겪고 있던 항암 신약개발 과제의 당면 문제를 AI 기술을 활용해 단 8개월만에 해결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신약개발 연구에 AI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 중 가장 어렵고 기여도가 높은 것은 약효가 극대화 되도록 후보 물질의 신규 화학분자 구조를 디자인하는 일인데, 후보로 개발 가능한 약 10의 60승개의 화학분자 구조 조합 중 약효가 높은 것을 찾기 위해, 먼저 분자 생성 모델을 통해 분자를 숫자로 표현한 벡터 공간을 구축하였다. 이 구축된 벡터 공간에서 AI 기반 최적화 과정을 통해 후보 물질 분자구조를 탐색한 후, 선별된 것만 실제 실험을 진행해 약효가 높은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글로벌 특허 확보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공개된 문헌 상의 분자 정보 빅데이터와 AI 분석 모델 기술을 통해 혁신적인 약효 물질 구조를 디자인 해냄으로써 신약개발 연구단계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실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DX for Company 영역에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과 사례들이 많으며, 이는 특정 업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DX for Company 영역에서의 활발한 탐색이 추천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유망 과제를 발견할 수 있는 가치사슬들의 다양성과 활용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기대 효과가 크고 생산성 및 수익성 개선과 같은 기업 성과에 직결 된다는 것 외에도, 추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재무적이든 정성적이든 그 효과를 내부 이해당사자들과 소통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영역이기에, DX 추진의 기대감은 높이고 저항감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 구매, 품질 등의 영역은 매년 다양한 개선 활동의 추진이 일상화된 문화를 갖고 있어, DX 실행 동력을 얻기에 수월한 특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DX for Company 성과는 종국에는 일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확실하게 변화, 정착되고, 타 사업장과 법인 등으로 확산돼야 진정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10배 확산 목표의 의미로 '10X'라고 칭하는데, 변화관리와 10X 확산은 DX for Company 추진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도전 영역이다. 일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확실히 변화될 때까지 집요하게 체화 시키는 과정이 부족하고, '확산성을 고려한 DX 과제 기획', '확산을 위한 유연한 플랫폼 개발' 등 10X 확산 방법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부족하다면, DX for Company 시도는 소위 파일럿 혹은 가능성 검증(Proof of Concept) 과제로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트랜스포메이션 과정, 이 변화관리와 확산은 매우 중요하다.

기초 체력이 탄탄하면 여러 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DX for Company 영역에서의 성공 축적은 결국 DX for Customer의 성공도 뒷받침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가져오면 고객 경험의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범위의 폭과 깊이는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삼수 LG전자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부사장) sam.Lee@lge.com

<필자소개>

이삼수 부사장은…

LG전자에 입사해 LG그룹 내 여러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아온 전략 전문가다. LG전자에서는 스마트비즈니스 전략, 기술전략, 사업전략 등 다양한 전략 분야를 담당했고, LG유플러스에서는 콘텐츠 및 서비스 사업을 담당했다. 2019년 LG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CDO) 및 그룹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 대표를 역임했다. 2021년 LG전자로 복귀해 CDO로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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