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온라인으로 연설했다. 1950년대 전쟁을 겪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것을 강조하며 러시아의 침공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에는 '부끄럽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총 300명의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고작 60여명이 참석하는 등 '홀대'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의 한 사용자는 “한국은 젤렌스키가 연설한 모든 국가 의회 중에서 가장 낮은 출석률을 기록했다. 저 빈 자리를 보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온라인 연설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우크라이나 측에 제안해서 성사됐다.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 이은 24번째 연설 대상국이 됐다.
하지만 우리 측 제안으로 마련된 자리임에도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고작 5분의 1 정도만 자리를 지킨 데다 그마저도 졸거나 딴짓하는 모습이 연방 포착됐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온라인 연결이 끊기지 않은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화면을 넘겨서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 등 결례도 범했다. 이보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온라인으로 연설한 국가에서는 수백명이 참석해서 경청하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국 국회의 모습은 '나라 망신'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감안해서 국익을 따져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적국인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연설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직후에다 정권 교체 준비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눈 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손님을 모셔 놓고선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것에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이와 같은 상황이었을까.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그는 특사를 통해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세계 만방에 폭로해서 일본에 빼앗긴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그로부터 115년이 지난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은 고종과 같은 절실한 마음으로 세계 각국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에 공격 무기 등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한국이 세계 공통 문제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릴 수 있다. 무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의원이라면 그에 걸맞은 외교적 품격을 갖췄으면 한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아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