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약 25년 전에 지능망을 이용한 복지통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스마트폰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핸드폰조차 매우 드문 상황이었다. 이른바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와 지능형 유선 통신망 및 인터넷을 연계해서 ICT 서비스가 생활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첨단 지능망으로도 구현이 어려워서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머물렀던 여러 시나리오가 이제는 대부분 실현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지병이 있는 고령자가 졸도했을 때 자동으로 119와 연결돼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것이 당시 기술과 시스템으로는 매우 어려웠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앱만 있으면 가능해졌다.
기술적 한계 극복에 주력했던 20세기의 복지통신은 인터넷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모바일 시대에 접어든 21세기 초반의 지금에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2010년 이후 플랫폼과 테크 기업이 ICT 서비스를 주도하면서 통신사의 복지통신에 대한 요구는 통신요금에 집중됐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도입된 '통신요금감면제도'는 2020년에는 9600억원의 요금을 감면해 디지털 격차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장애인, 저소득층, 고령자와 같은 취약계층이 기본적인 통신 인프라에 대한 접근에서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민간이 1조원 규모의 투자를 한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메타버스, NFT, 디지털트윈 등이 이끄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는 취약계층이 플랫폼과 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적절히 누리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요금 감면에만 집착하는 정책은 오히려 디지털 격차를 심화할 위험성이 짙다.
실제 과기정통부가 출간한 '2020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계층이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비율은 93.7%에 이르러서 통신망 접속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에 반해 디지털 역량과 활용 수준은 각각 69% 및 76.9%로, 비취약계층과 비교할 때 큰 격차를 보였다. 이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는 통신복지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함을 시사한다. 또 기존의 통신요금에 집중된 접근은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통신요금감면제도로부터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활용으로 초점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통신복지라는 용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 낡은 통신복지 개념과 제도적 틀을 대체할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가장 짙고 유효한 방안은 현행 통신요금감면제도를 개편해서 '디지털복지기금(가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통신사 기여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통신복지에 대한 투자를 기금 방식으로 확대 및 개편한다면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취약계층의 다양한 ICT서비스 관련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디지털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금으로부터 '디지털 바우처'를 마련해서 취약계층 유형별로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의 맞춤형 구독과 활용 교육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둘째 디지털복지기금에는 통신사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자, 단말기 제조사, 정책당국 등 ICT 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조율하거나 복합적인 상황에서 더욱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셋째 독립적인 기관이 디지털복지기금을 운영하고 정책당국이 감독한다면 수혜자 발굴과 사각지대 해소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 복지혜택의 유효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코먼코즈(Common Cause)라는 유서 깊은 단체를 창립해서 미국의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존 가드너는 건강한 사회에서는 시민의 열망과 부진한 제도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한 발 한 발 전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디지털 모바일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부진한 제도를 고쳐서 '통신복지'로부터 '디지털복지'를 향해 나아갈 때다.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dyoha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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