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인강' 배속으로 들으면 오히려 학습 효과 좋다?!

비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강의는 정규 교육 기관에도 자리를 잡았을 만큼 대세다. 학습자 입장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 내용을 반복해서 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강의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지식과 통찰이 풍부한 강의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계속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동영상 강의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녹화된 영상이라는 점을 이용해 원하는 배속으로 강의를 느리게 혹은 빠르게 들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많은 학생이 1.5배속, 2배속으로 빠르게 듣기를 이용하는데, 이는 짧은 시간에 강의를 끝내 시간을 아끼게 해준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점. 우리는 통상 빠르게 듣는 게 정속보다 학습 효율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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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것은 일상이 됐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동영상 강의를 정해진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청한다. (출처: Shutterstock)

◇정속이나 2배속이나 큰 차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의를 배속으로 듣더라도 학습 효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속으로 듣는 것보다 더 학습이 잘 됐다! 이는 실험으로 입증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연구팀은 재미있는 실험을 계획했다. UCLA 학부생 231명을 실험 참여자로 모아 이들을 총 4개 집단으로 나눠, 15분 이내에 비디오 강의를 시청하게 했다. 하나는 로마 제국의 역사, 다른 하나는 부동산 강의였다. 각각 네 집단은 1.5배속, 2배속, 2.5배속으로 시청했고 나머지 한 집단은 정속으로 강의를 들었다. 객관성을 위해 시청 도중에 일시 정지를 누르거나 노트에 필기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럼 학업 성취도는 어떻게 측정했을까? 모든 학생은 시청 직후와 일주일 후 2차례에 걸쳐 객관식 질문으로 짜인 시험 문제를 풀었다.

그 결과는 우리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강의를 정속으로 듣는 것과 1.5배, 2배로 듣는 것에서 학습자의 성취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속으로 들은 집단은 로마 제국과 부동산 질문 각각 20개, 즉, 총 40개 질문 중 평균 26개를 맞혔고, 2배속으로 들은 집단과 1.5배속으로 들은 집단은 25개를 맞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2.5배속으로 들은 집단은 22개를 맞혀 다소 이해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놀랄 만한 차이는 아니었다.

일주일 후에 시험에서는 각 집단에 대해 40개의 질문을 줬다. 이때 정속 집단은 평균 24개, 1.5배와 2배 집단은 평균 21개, 2.5배속으로 강의를 들은 집단은 20개를 맞혔다. 정답을 맞히는 데 있어서 강의 속도는 변화를 일으키는 대단한 변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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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강의 속도(1배속, 1.5배속, 2배속, 2.5배속)에 따른 시험 결과. 흰색 막대는 강의 시청 직후에 본 시험, 검은색 막대는 강의 시청 후 일주일 뒤에 본 시험 결과를 나타낸다. 두 경우 모두 강의 속도에 따른 학습 효과에 큰 차이가 없었다. (출처: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2배속을 활용하면 학습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다

재생 속도에 따른 이해력의 차이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바로 2배속으로 들으면 정속보다 시청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학습 효과가 달라질까? 연구팀은 이것 역시 실험했는데, 역시나 달랐다. 2배속으로 2번 들은 학생들은 더 정답을 잘 맞혔다. 단 일주일 후 시험을 봤을 때의 차이가 나타났는데, 정속으로 본 집단이 일주일 후 문제를 풀 때와 2배속으로 한 번 보고 일주일 뒤 한 번 더 2배속으로 강의를 봤을 때 2배속 집단이 더 많은 문제를 맞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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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속으로 한번 들었을 때(검은색 막대)와 2배속으로 두 번 들었을 때(흰색 막대)의 성취도 결과를 나타낸 그래프. 1배속으로 한번 들었을 때 학업 성취도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됐으나, 실제 실험 결과 2배속으로 두 번 들었던 학생들이 더 많은 문제를 맞혔다(맨 오른쪽 그래프). (출처: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이 연구에서 실험 전 설문 조사 때 평소 빠른 속도로 강의를 시청한다고 답변한 학생은 85%에 달했다. 대부분 학생이 정속으로는 인터넷 강의를 듣지 않는 것이다. 이는 아마 전 세계 학생들, 또는 뭔가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이 연구 결과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잘못된 학습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우직하게 정속으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전략적으로 하는 것이 더 낫다.

2배 정도 속도의 빠르기는 우리 인지 능력의 과부하를 초래하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공부하려면 학습자는 강의를 2배속으로 시청하되 2회 보는 것이 좋고 두 번째 볼 때는 시험 직전에 보는 것이 수행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강의를 만들고 제공하는 사람이 고민해볼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강의를 2번 보도록 동기를 유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인터넷 강의의 효율성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비대면 시대를 맞이해 초등학교로까지 비대면 강의가 확대된 만큼 원격 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인터넷 강의의 학습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강의를 정지해 놓고 필기하는 것, 자막의 유무, 강의 내용의 난이도, 동영상의 길이, 강의 교수자의 능력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앞으로는 속도와 함께 이런 변수가 학습자의 학습 동기와 수행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고 긍정적인 학습 강화를 일으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연구해야 할 것이다.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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