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하이테크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제재 방안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기아 등 우리 기업도 영향권에 들었다. 전자제품, 자동차 수출과 현지 생산 전반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자동차업체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미국과 우리 정부 지침에 맞춰 대응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우크라이나 현지에 법인을 둔 기업은 이보다 앞서 한국인 주재원을 철수시켰다. 이들 기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현지법인을 비상운영체제로 전환했다. 러시아에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가전 생산공장은 현재 정상 가동 중이고, 주재원도 남아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모두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러시아를 포함해 중앙아시아 일부에만 공급한다. 따라서 러시아 공장이 문을 닫아도 해당 지역 시장만 줄어들고 다른 국가 제품 공급 차질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러시아 내수와 CIS 일부에만 공급되고 있어 전체 공급망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것”이라면서 “다만 현지 시장 위축으로 인한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0%로 1위인 삼성전자는 제품 수출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전자제품 러시아 수출이 금지되면서 스마트폰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문은 실제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러시아로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와 기아 현지 공장으로 납품된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하면 현대차와 기아도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간 23만대 규모 생산공장을 운영한다. 기아를 포함한 러시아 수출량은 연간 10만대에 이른다. 물류 차질이 발생하면 러시아 생산설비를 정상 가동하기 어렵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쌍용차 등도 갈등 영향권에 있다. 쌍용차 협력사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알루미늄 등 원자재를 수입하고, 인접 국가인 슬로바키아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KAMA는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해당 품목에 대해 한시적 긴급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러시아 수출 제재로 발생하는 피해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