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갈망하던 법안이 잇달아 좌절되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반도체 산업 육성을 기치로 걸었던 '반도체 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은 결국 반쪽짜리가 됐다.
벤처업계는 외부 자본 유치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이 갈수록 낮아져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의결권 도입을 건의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4월 총선 '2호 공약'으로 복수의결권 도입을 약속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국회에 입법 논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부작용을 우려한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 업계 숙원은 발목이 잡혔다.
반도체 특별법은 그나마 통과됐으나 그 내용은 애초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확대만 실현됐을 뿐 기업과 산업계에서 요구한 주 52시간 탄력 적용,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등은 빠졌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부랴부랴 준비하더니 역시 산업을 위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수도권·비수도권 대학 불균형과 같이 지역 표심을 우려하는 정치 논리에 뒤로 밀렸다.
집권 여당이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신속 제정을 약속해도 결과는 산업계 요구와의 괴리가 크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기득권을 우선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죽하면 진정으로 산업을 걱정하고 소신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 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유권자의 적극적이면서 현명한 판단이 정치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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