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디지털 뉴딜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의 수집과 개방, 유통과 활용을 지원하는 16개 분야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데이터 이용자가 다양한 플랫폼의 데이터를 쉽게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관문인 ‘통합 데이터 지도’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 '기생충'과 '미나리'의 해외 영화제 수상에 이어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함으로써 K-팝에 이어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데이터 분석가인 이제현 박사(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가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서기까지 지난 50년간 한국 영화의 큰 흐름을 데이터로 복기했다. 통합 데이터지도에 기고한 '데이터로 보는 한국영화 50년사'는 문화 빅데이터 플랫폼에 축적된 KOBIS 박스오피스 영화정보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저자는 1970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개봉한 영화의 편 수, 장르, 관객동원 데이터를 교차로 분석했다. 50년간 영화시장을 둘러싼 여건은 기술발달과 여러 환경적 요인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1970년대는 저렴한 흑백TV의 보급으로 극장 개봉작이 안방극장과 경쟁을 시작한 시기였으며, 2020년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시장이 또다른 대세로 떠오른 시기이자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포함한 외부 활동이 크게 위축된 현재를 반영한다.
그 사이에는 시장 개방 압력을 받던 80년대, 경제 호황이 정점에 달했던 90년대, 인터넷이 생활 속으로 들어온 2000년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0년대가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시대가 영화 데이터에 남긴 흔적을 찾아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복기하며 데이터를 통해 한국 영화 역사를 분석하였다.
데이터를 통해 본 국내 영화 개봉 편수는 1971년부터 2020년까지 2만3409편이다. 그 중, 한국과 미국영화가 절반 이상인 59%이며 일본까지 포함하면 78%에 달하니 세 국가의 영화가 국내 영화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 1988년, 미국과 홍콩 영화 유입을 계기로 한 '장르 다양화'
영화진흥위원회가 분류한 21가지 영화 장르를 기준으로 2만 3천여편의 영화를 살펴보면 드라마와 멜로/로맨스가 압도적인 비중을 보이며 액션, 코미디 장르가 그 뒤를 잇는다. 다만, 장르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 항목이므로 이러한 데이터는 개별값을 신뢰하기보다 전반적인 경향성을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1988년 헐리우드 영화 국내 직배를 계기로 한국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이전 시기와 달리 해외 영화, 특히 미국과 홍콩 영화의 개봉 수가 크게 늘었다. 로맨스와 성인물에 치우쳐져 있던 장르는 해외 영화의 유입으로 코미디, 액션, 스릴러 등으로 풍성해졌다. 이와 함께 1998년 CGV 강변점을 시점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곧이어 시작된 인터넷 예매와 맞물려 영화시장을 크게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1993년, 한국 영화의 '반격'
1990년대에는 서울 관객 기준으로 '사랑과 영혼', '클리프 행어'를 비롯한 많은 외화가 백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1997년 외환위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이타닉'은 200만명 가까이 관람한 반면 비슷한 시기 한국 영화 관람객은 크게 줄어 1995년에는 38만을 동원한 '닥터 봉'이 최대 흥행작이었다(모두 서울 관객 기준).
최대 흥행작 기록으로만 보면 이 시기 해외 영화로 크게 쏠린 관객으로 인해 한국 영화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이지만 데이터는 이미 한국 영화의 반격이 1993년도에 시작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한 해 개봉한 특정 국가의 영화들을 관객 수를 기준으로 가장 적은 작품부터 많은 작품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작품의 관객 수인 중간값으로부터 관객들의 전반적인 기대치를 읽을 수 있는데, 한국 영화의 중간값이 해외 영화를 1993년부터 앞질렀기 때문이다.
◇ 1999년, 최다 흥행작은 모두 '100만 이상'
중간값은 자료 분포 간 격차가 커서 평균값 보다는 순위를 매겻을 때 중앙이 위치한 값이 더 의미있을 때 주로 쓰인다. 즉, 극단적인 데이터가 있는 경우에는 평균치나 최대치보다 중간값이 분포의 특성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어 영화별로 관객 수에 큰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유형의 분석에는 중간값이 더 유용하다. 1998년에는 해외 영화 관객의 중간값이 5천명을 넘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영화는 3만명 선으로 크게 늘었으며, 1998년 최고 흥행작이었던 '약속'은 서울에서만 70만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후 한국 영화는 무섭게 질주하여 1999년 이후 최다 흥행작이 모두 100만 이상의 서울 관객을 동원하였다.
또한, 2003년 '실미도'가 첫 전국 천만관객을 동원한 이후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19편의 영화가 천만관객을 넘어섰다. '명량'과 '극한직업'을 비롯하여 2019년에 개봉한 '기생충'이 1031만명을 기록했다.
시기별 개봉한 영화의 작품과 관객 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90년대 해외 영화가 유입되며 커진 국내 영화시장이 더욱 발전된 한국 영화로 인해 양과 질 모두 크게 성장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 2014년, 한국영화 관객 급락…미화와 '업치락 뒤치락'
그러나 데이터는 같은 기준에서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비친다. 1993년 4000명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해 2004년 18만명 수준으로 최고점을 달성했던 한국영화 관객 중간값의 우세한 상황은 2008년 미국 영화에 다시 반납했고, 2009년 '해운대'는 '아바타'에게, 2010년 '아저씨'는 '인셉션'에게 서울 최대 관객 수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이후 한국영화 관객의 중간값은 빠르게 감소하여 1000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 2020년, 코로나가 할퀴고 간 극장가...OTT가 새로운 '경쟁자'로
최근 박스오피스 데이터에서는 코로나가 남긴 흔적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국내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한 20년 2월 이후, 영화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었으며, 당해 추석에도 다른 해의 4분의 1에 불과한 관객만이 극장을 찾았다. 또한, 넷플릭스 등 OTT의 등장이 코로나 시기와 겹쳐 영화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1970년대에는 흑백TV와의 경쟁이 관건이었는데, OTT 전성시대를 맞아 다시 TV와의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해당 글에서는 한국 영화산업의 역사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이루어졌으며, 시기별 국내외 동향도 사진, 도표 등 시각화 자료를 통해 알기 쉽게 제시하여 한국 영화산업을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데이터로 읽은 한국영화 50년사의 자세한 내용은 통합 데이터 지도 내의 데이터 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원 jehyu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