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제2벤처붐 조건

투자 열기가 뜨겁다. 국내 상장 주식시장은 물론 벤처투자, 엔젤 투자, 해외주식, 가상자산 시장까지 투자자와 규모가 연일 늘고 있다. 1일 코스피 지수가 연중 최저치를 찍기도 했지만 여전히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2 벤처 붐'으로 불리는 벤처투자 열기는 유례없는 활기를 띠고 있다.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15개나 늘었을 정도로 비상장 기업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2000년대 초반에 인 첫 벤처 붐이 상장 기업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비상장기업, 장외시장으로 관심이 넓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회수 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투자한 돈의 수익 시현이 더욱 쉬워졌다는 의미다. 과거 2000년 벤처 붐 당시 비상장 기업의 주식은 상장하지 못하면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이제는 상장하지 않은 기업이어도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금 회수가 가능해졌다. 초기 투자자가 투자한 지분을 전문으로 사들이는 구주인수펀드(세컨더리펀드)도 시장에서 운용되고 있다. 증권사는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털과 협력해 개인을 위한 신탁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초기 투자자도 얼마든지 이르면 2~3년만 기다려도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중간 회수 시장이 두꺼워진 영향이 크다. 벤처캐피털 등 일부 벤처금융권에서만 참여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권까지 스타트업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코스닥 상장이 과거 벤처기업의 유일한 회수 수단이던 것과는 달리 인수합병(M&A) 역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기술 기업은 물론 디지털전환(DX)과 혁신 성장의 동력 수혈이 필요한 많은 플레이어가 스타트업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스타트업 몸값도 상승하면서 주주의 손바뀜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벤처 업계에서 선거를 앞두고 매번 반복하던 '회수 시장 활성화'라는 구호가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시장 변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벤처투자자 모두가 경영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기반의 기업발 M&A 열기도 세컨더리펀드 증가도 엔젤투자자 증가 역시 모두 사전 규제 완화가 없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에 민간 혁신을 뒷받침할 국회의 움직임은 여전히 굼뜨다. 변화하는 환경 고려 없이 여전히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이라는 과거 논리에만 머물러 있다. 이렇다 보니 제도 개선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논의조차 하지 못한 법안이 국회에 잔뜩 쌓여 있다. 내년도 예산도 국회를 통과한 만큼 이제는 제2 벤처 붐을 뒷받침할 제도 개선에 국회와 정부, 민간이 다시 머리를 맞댈 때다.

Photo Image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