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 상승 등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한 국제사회가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미국은 전략 비축유 5000만 배럴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영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도 동참한다.
미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가격을 낮추고 세계적인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외교적 노력의 결과 중국, 인도, 일본, 한국, 영국을 비롯한 주요 석유 소비국이 동참한다”고 밝혔다.
전략 비축유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비축·관리하는 원유다. 미국은 국가 안보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이 우려될 경우 대통령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973년 석유 파동 때부터 현재까지 약 6억배럴이 넘는 양을 비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미·중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도 동참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원격 정상회담에서 비축유 방출을 요청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과 공동으로 비축유를 방출한 적 있지만, 중국이 동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 공조가 에너지 가격을 실제로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켓을 인용해 “미국 등 총 6개국이 방출하는 비축유는 약 6500만~70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세계 석유 일일 소비량 절반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세계 석유 일일 소비량은 올해 4분기 기준 1억 배럴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WSJ는 “애널리스트들이 급증하는 수요와 비교해 정부 결정이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백악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 정부가 방출하는 비축유 양을 고려할 때 에너지 가격을 떨어뜨릴 만큼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에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물가 상승은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 CBS뉴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44%를 기록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연합체인 석유수출국기구플러스(OPEC+)가 반발하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OPEC플러스는 “주요 석유 소비국이 전략 비축유 수백만 배럴을 방출하는 것은 현 시장 상황에서 정당하지 못한 조치”라면서 “추가 생산 계획을 재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유가는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3%(1.75달러) 오른 78.50달러에 마감했다.
오다인기자 ohda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