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테슬라'는 없고, '현대차'만 있다

지난달 국토부에 등록된 전기차 수가 누적 20만대를 돌파했다. 2013년 전기차 보급이 시작된 이후 9년 만에 성과다. 하지만 중국이나 다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모든 차량 대수(2478만대)에 비하면, 전기차 비중은 아직 0.8%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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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43만대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정부 목표를 채우려면 내년에만 약 22만대 전기차를 보급해야 가능하다. 이는 올해 보급 물량 7만대보다 세 배 많은 수치다. 환경부는 내년에 20만대 전기차를 보급하는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단순 보급 숫자 보다, 우리 산업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시장을 따라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에서 차량 당 보조금을 가장 많이 주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보급 초반에 차량 구매에만 약 3000만원을 지원했고, 현재는 1500만원 수준으로 보급 물량은 늘리는 대신 개별 지원금은 줄여가고 있다. 충전기도 한때 700만원이나 지원했다. 지금은 완속충전기를 포함해 설치·공사비와 한국전력에 내는 비용까지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세금 혜택과 고속도로 통행료, 주차장 요금 할인 등 각종 혜택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처럼 지원금을 많이 쓴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국내 전기차 산업 경쟁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현재까지 전기차 보급에 10조원이 넘은 국가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국내엔 현대차·기아를 제외하곤 제대로된 완성 전기차 업체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팔린 전기버스는 현대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국산이고, 경·소형 전기차는 대부분 중국산 제품에 배터리만 국산으로 갈아 끼운 것들이다. 보조금 지원과 함께 자국의 산업까지 챙겨온 다른 나라 사정과는 상반된다. 미국과 중국, 유럽 다수 국가에는 완성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쏟아지고 있다. 충전이나 배터리 등 관련 분야 혁신 기술을 뽐내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든든한 배터리 산업 벨류체인까지 다 가졌지만, 완성 전기차 기업은 하나 없다.

정부가 한때 완성 전기차 산업을 키우겠다고 수천억원을 들여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또 수천억원을 투입해 무선 충전이나, 한국형 배터리 교환형 시스템 사업도 벌였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런 결과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일도 보지 못했다.

전기차 충전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충전기 설치 수량만 채우면 엄격한 기준 없이 돈을 주기 때문에 수요가 없는 곳까지 마구잡이로 설치되는 실정이다. 1년 내내 사용이 없는 충전시설이 여전히 많다. 특히 올해는 정부 돈으로 설치한 충전기를 내세워 회사를 파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민간 충전업체들이 전액 정부 돈으로 받은 충전소를 다른 회사에 지분 넘기면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며 충전시설 관리는 엉망인 상황에, 정부가 민간 업체 배만 부르게 해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 정책, 이제는 바뀔 때다. 전기차 보급 관점에서 자국 산업 진흥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보다 테슬라 같은 스타기업이 나오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보급 숫자만 쳐다보지 말고, 우리 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부터 찾자.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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