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지멘스가 디지털 마켓플레이스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서플라이프레임(Supplyframe)을 인수했다. 최근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슬 재편의 한 사례다. 서플라이프레임은 메이커 커뮤니티인 핵카데이(Hackaday)와 메이커 마켓플레이스인 틴디(Tindie)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마켓플레이스다. 전자제품 디자인부터 소싱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갖추고 있다.
메이커가 개발한 사물인터넷(IoT) 시제품이 메이커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되고 있다. 메이커들은 아두이노, 라스베리 파이 등 오픈 하드웨어(HW)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제품을 쉽고 빠르게 개발한다. 틴디 같은 메이커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하고 피드백을 받아 더 나은 제품을 제작한다. 킥스타터 또는 인디고고에 가서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파일럿 생산을 하고, 벤처투자를 받아 스타트업이 돼 마침내 대량 생산에 이른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개발할 수 있는 HW 플랫폼, 이를 시장에서 쉽게 팔고 소비자 반응을 체크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 대량 생산을 위한 펀딩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 낸다. 이런 생태계는 수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앞으로 사물(Things)의 롱테일을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좁은 틈새시장에 집중해 더 많은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롱테일 이론의 창시자이자 초기 메이커 운동을 이끈 크리스 앤더슨의 예견이다.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품을 출시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완전히 분산된 디지털 마켓플레이스가 제조업의 지형을 크게 바꾸게 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슬이 디지털 마켓플레이스로 재편되는 이유이다.
메이커 수는 얼마나 될까. 라스베리 파이가 올해 초 IoT 디바이스 시장을 겨냥해 초저가의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과 그의 개발보드 피코(Pico)를 출시하자 바로 110만개의 주문을 받았다. 라스베리 파이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4000만개의 교육용 컴퓨터 보드를 공급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롱테일은 얼마나 클까. 또 IoT 디바이스용 반도체 칩의 롱테일 시장은 얼마나 될까. 80/20 파레토 법칙이 적용되는 기존 시장만큼, 아니 마치 아마존의 도서 판매처럼 기존 시장 이상 커질 수 있을까. 라스베리 파이의 초저가 MCU와 피코의 등장은 롱테일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큰 변곡점이 될 것 같다.
그동안 IoT 팹리스들은 모두 대량 생산하는 대기업 고객이나 대량 생산되는 전자제품을 겨냥해서 칩을 개발해 왔다. 80%의 매출이 20%의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파레토 법칙이 적용되는 기존 시장에 맞춰 왔다. 그러나 IoT 디바이스에는 새로운 시장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롱테일 시장이다. 오픈 HW 덕택에 그야말로 새롭고 다양한 응용과 디바이스들이 메이커 및 스타트업에 의해 태어나고 있다. 메이커 마켓플레이스 성장과 더불어 롱테일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칩이 더 다양한 응용과 디바이스에 적용될수록 유리하다.
기존 시장은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핏빛으로 물든다는 의미에서 레드오션이라 칭한다. 반면 블루오션은 고객과 기업의 가치를 비약적으로 높여 이를 통해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 공간과 수요를 창출한 시장을 말한다. 롱테일이 IoT 팹리스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가치는 제조와 시장의 디지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봉 위즈네트 대표 yblee@wizne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