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온실가스 가운데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배출원은 '건물'이다. 전체 온실가스 가운데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68.8%에 이르며,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건물 분야의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32.8%이다.
건물 탄소중립의 핵심은 '전기화'다. 빌딩 건축에 필수적인 냉난방 설비를 전기식으로 교체하면 건물의 탄소중립 실현은 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전기화를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관련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규제 때문이다.
먼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제2017-47호 '건축물의 냉방설비에 대한 설치 및 설계기준' 제2장 4조와 산업부 고시 제2020-197호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이 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냉방방식 설비용량이 전체의 60% 이상이 되도록 유지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규정이 합리적이었다 하더라도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는 맞지 않으며, 추세에 따라 법 개정은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건물 분야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건물 필수요소인 냉난방 설비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즉 전기화를 일궈 나가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려면 관련 법령의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공공건물의 경우 일정 부분 신재생 설비를 이용해야만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규제는 향후 민간 건물에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문제는 전기화가 가능하도록 허용한다 하더라도 신재생 에너지에 포함되는 냉난방설비 열원이 지열과 수열뿐이라는 것이다. 냉난방 설비는 빌딩 건축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데 이 두 가지 선택만으로 충분할까.
신재생 설비 가운데 냉난방 설비로 주로 활용되고 있는 지열방식은 지하 150~200m 천공해서 600m가 넘는 폴리에틸렌(PE)관을 이용해 지중열을 가져오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성적계수(COP)가 높고 낮음을 떠나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COP란 열효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공부시간(분모) 대비 성적(분자)의 의미로 높을수록 효율이 좋다.
전원주택에서는 냉난방 필요 용량이 작아 천공을 2개만 하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대도심권의 경우 지하 150~200m를 100개 이상 천공한다고 하면 지반 침하, 소음 등으로 인한 이웃 건물 피해 등 수많은 분쟁의 소지로 작용하는 등 도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리하면 전기를 활용하는 공기열히트펌프등이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추가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냉난방 설비 구축 시 지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안이지만 지열 방식의 경우 이 같은 문제로 대도심권에 일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지열냉난방 방식의 경우 구축비용이 타 방식 대비 고가이기 때문에 더 저렴한 공기열 히트펌프와 자가소비형태양광·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시스템(BIPV)·에너지저장장치(ESS)를 패키지형으로 설치하도록 해서 더 많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이고 친환경적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외국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탄소중립의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공기열 히트펌프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지정하는 등 많은 기술 발전을 이뤄 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해외의 흐름에 맞춰 건물 부분의 탄소중립을 위한 적절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실제로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많은 사람이 전기식 냉난방 설비 도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법 규정에 부닥쳐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한국에너지공단 등 관련 기관에서는 현 상황에 맞게 법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
관련 법 개정 이후에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기열 히트펌프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확대 지정해야 한다. 고객의 냉난방 설비 열원 선택의 폭을 넓혀 줘야 대도심권 신축, 기축건물에 대한 실질적인 건물 분야의 탄소중립 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
둘째 기축건물의 탄소중립 활성화를 위해 냉난방열원설비 교체 또는 부분 교체 시 현재 대비 탄소배출 저감을 강제하는 법적 규정을 만들어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우선 적용해야 한다.
셋째 대기업에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하고, 각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최근 외부에서 이미 구축·운용하고 있는 태양광을 사들여서 의무 감축량을 해결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 방식으로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총량이 줄지 않는다. 건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회사의 냉난방 열원설비에 관심을 기울여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건물 분야의 탄소중립을 성공적으로 이뤄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병행하도록 신·개축 관련 법령의 개정이 선행돼야 하며 △공기열을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확대 지정해야 하고 △기축 건물 에너지 설비 교체 시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해야 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움직임에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아무런 변화 없이 '탄소중립의 실현'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탄소중립 방안을 마련해서 실질 적용이 가능하도록 그 기반을 다져야 한다. 즉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산업 분야에서는 공정 자체의 탄소 배출을 없애는 등 생산방법론 자체 변경과 그린테크놀러지 등의 발전,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물 분야는 규제 요소만 없애도 탄소중립이 쉬운 영역이다.
결국 그 해결책은 정부 의지에 달려 있다. 산업부와 에너지공단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이순형 광주전남 과총 에너지신소재분과위원회 위원장 leehty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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