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백 냥이면 눈이 구십 냥.' 눈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속담이다. 안과 질환 가운데 황반변성, 녹내장 등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발병률이 높아지는 대표 노인성 안질환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질환 가운데 하나는 유전이 요인으로 작용해 증상이 발현되는 각막이상증(corneal dystrophy)이다.
각막은 거울로 눈을 볼 때 흰자위 가운데 투명한 부분이며, 우리 눈을 카메라에 비교하면 카메라의 투명한 필터에 해당한다. 카메라는 투명한 필터와 투명한 렌즈, 기능 좋은 필름이 있어야 사진이 잘 찍힌다. 눈도 마찬가지다. 투명한 각막과 수정체, 좋은 망막이 있어야 좋은 시력이 유지되다. 개개인에 따라 안경을 쓴다 하더라도 교정 후 정상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각막이상증은 유전 요인으로 말미암아 각막에 변화가 생기는 질환을 총칭한다. 대부분 어릴 적에는 투명한 각막을 유지하지만 성장 및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각막 기능이 떨어지거나 각막 내에 이상 물질이 쌓여 혼탁해진다. 그 결과 안구 깊은 곳으로 빛을 보낼 수 없어 수정체와 망막이 정상으로 작동해도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여러 형태의 각막이상증 가운데에서도 각막 앞쪽에 발생하는 TGFBI라는 특정 유전자가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키는 현상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TGFBI 유전자 변이 각막이상증 가운데 흔한 것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이라고도 불리는 제2형 과립형각막이상증이다. 이 질환에서는 TGFBI 변이 단백질이 생성된다. 이것은 각막에 미세한 상처가 날 경우 상처에 변이 단백질이 지속적으로 엉겨 붙어 혼탁이 발생하며, 방치할 경우 시력이 매우 저하될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은 국내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이던 1950년대에는 안과에서 관찰될 경우 처치 불가한 유전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 질환을 비롯해 다양한 안과 질환으로부터 시력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이 병을 사전에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라식·라섹과 같이 중심각막을 레이저로 깎는 시력교정술을 받은 환자에게 시력 저하가 발생하며 이 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바 있다.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은 자각 증상만으로는 조기 발견이 어렵다. 부모 양쪽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모두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유전자에 해당하는 동형접합자의 경우 3세부터 시력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의 유전자로부터 물려받은 이형접합자의 경우 10대부터 증상이 발현돼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편함이 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질환은 서양보다 동양에 더 많이 발생하며, 한국·일본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국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발병 빈도는 870명 가운데 1명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과거에는 주로 안과의사가 사용하는 세극등현미경을 통해 병변을 진단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질환의 유전자 이상 부위가 밝혀져 구강 피세포나 채혈을 통해 환자의 세포를 채취한 후 유전자 검사로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안과질환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지속 발전, TGFBI 변이에 따른 다섯 가지 각막이상증에 대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90분 만에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도 국내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나아가 미국에서는 75종의 원추각막 유전자, 2000종이 넘는 각막이상증 관련 유전자 변이를 진단하는 검사법도 쓰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안과 의료진은 원추각막 성향이 있는 환자들을 확률 유전학적으로 미리 진단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은 국내에서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에 따라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보유자를 조기에 진단하고,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질환에 대한 인지 증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안과 의사들이 아벨리노 각막이상증에 대한 정확한 기초학적 및 임상학적 학술정보를 적극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눈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김응권 연세대의대 안과 명예교수 겸 새빛안과병원 원장 eungkkim@saeviteye.com
-
정현정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