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과 법인세 실효세율 차이 정비
조세회피 방지·이중과세 문제 해결
최저한세율 '15%' 놓고 여전히 이견
소비자에게 '세부담 전가' 우려도

디지털세 최종합의안은 한 세기 동안 유지됐던 국제 조세체계 대전환이라는 의의가 있다. 미국과 프랑스 대립으로 좌초할 위기에 처했던 디지털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재로 136개 참가국이 동의하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합의에 대해 “치열한 다자협의 끝에 역사적인 글로벌 조세개혁 골격을 최종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필라1을 통한 과세권 배분으로 거대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세권 확보가 가능해졌고, 법인세 최저한세가 도입되면서 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도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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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성장, 소득이전 통한 세원 잠식 규모 커져

다국적 디지털 기업 조세회피 문제 해결은 각국 과세·재정당국의 오랜 숙원이었다.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는 지난 4년 동안 이뤄졌지만 다국적 디지털 기업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이전부터 형성됐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가 대두되면서 현행 법인세 체계에서는 이들에 대한 과세가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었다.

현행 국제 조세체계는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국제연맹은 다국적 기업에 여러 국가가 동시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조세체계를 구성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국제연맹이 세운 원칙은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를 완전히 방지하지는 못했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는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은 이전가격을 조작해 매출을 축소하거나 지식재산권을 저세율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옮겨 이에 대한 수익에 대해 낮은 세금을 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기업 내부 대출로 부채를 이전하거나 조세회피처와 같은 특정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법인세액을 낮추는 방법 등을 동원한다.

여기에 정보기술(IT) 발달로 디지털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물리적 사업장 없이도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과세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디지털 기업 법인세 실효세율, 전통 제조업체의 절반도 안돼

기존 제조업과 디지털 기업 간 조세형평성 이슈도 불거졌다. EU집행위원회는 전통 제조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3.2%지만 디지털 기업은 9.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실효법인세율은 2~8%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디지털경제는 공장을 세우거나 매장을 내지 않아도 수익을 낼 수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디지털 기업의 무형자산 비중은 91%에 달한다. 무형자산은 유형자산보다 더 쉽게 해외이전을 통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다. 또 디지털 기술은 어디서 이익이 오는지에 대한 판단을 모호하게 해, 국제 조세체계에서 합의한 국별 법인세 부과가 쉽지 않다.

디지털경제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다국적기업의 국제소득에 대한 과세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으로 아일랜드를 비롯한 몇몇 국가는 법인세 실효세율이 한 자릿수대에 불과했는데, 공장을 통째로 옮길 수 없는 기존 제조업체들과 달리 디지털 기업은 저세율국으로 본사를 옮겨 세금을 회피했다. 조세회피에 관해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연합에서는 매년 전체 법인세의 7.7%에 달하는 360억유로 규모 세원잠식이 발생했다.

각국 정부는 2012년 6월 G20 정상회의 선언문에서 BEPS가 금지돼야 함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다국적기업 조세회피 대응에 나섰다. OECD는 2015년 15개 실행계획(Action Plan)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이 중 고정사업장 인위적 회피 방지를 규정한 액션7과 이전가격세제 강화를 규정한 액션8~10이 디지털세로 연결됐다.

OECD는 2018년부터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초반 과세 대상으로 지목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기업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는 2019년부터 디지털서비스세를 별도로 도입했고 당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통상마찰로 비화될 위기를 맞이한다.

논의의 전환은 코로나19였다. EU는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재원의 일부를 디지털세를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미국도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실시하면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상했고 디지털세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기로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디지털세는 논의 초반 고정사업장 없어 기존의 방식으로는 과세가 어려운 디지털 기업들이 대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재를 생산하는 제조업까지도 범위가 넓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디지털세는 최종 합의문을 만들어냈지만 추가 논란은 지속될 수 있다. 최저한세율인 15%는 논의 과정에서 거론된 가장 낮은 세율이다. 옥스팜 등 국제 NGO는 20% 이상을 최저세율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인세율을 올린 미국도 글로벌 최저한세율로 21%를 제시한 바 있다.

◇세부담 소비자에 전가하는 부작용 우려도

기업들이 세금 부담을 소비자에 전가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디지털세 부과는 무형자산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업활동 소재지 파악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조세회피를 방지할 수 있으나 기업의 세부담을 소비자가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프랑스가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했을 때 디지털 기업은 세금의 4%만을 부담하고 소비자가 57%, 중소기업을 포함한 소매상이 39%를 부담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하자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해당 국가 고객을 대상으로 요금체계를 변경해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켰다. 애플도 2020년 9월 세금변동을 이유로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터키에서 유통되는 애플리케이션의 가격을 올렸다.

또 글로벌 조세정책의 변화는 디지털세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면 탄소국경세가 글로벌 조세정책의 이슈로 부상할 예정이다. EU는 '탄소국경조정 매커니즘(CBAM)'을 발표하고 탄소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인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EU는 2030년부터 CBAM을 통해 100억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