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39)AI시대 디지털불신(不信)과 갈등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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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외아들마저 엑스레이 촬영이나 마취 없이 수술하는 바람에 세상을 떴다. 의사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러 교회에 가지만 신도의 돈을 빌려서 갚지도 않고, 누가 훔쳐 갈까 봐 신발 들고 예배를 보는 그들에게 실망한다. 절에도 가지만 스님은 시주받은 쌀을 내다팔고, 아들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도 웃돈을 요구하며, 가진 자와 차별한다. 분노한 그는 아들 사진과 위패를 태우며 믿을 수 없는 사회와의 싸움을 준비한다. “그렇지. 내겐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소설가 박경리의 1957년 단편 '불신시대'(不信時代)의 줄거리다.

성장이 가파를 때는 모두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 갈등이 약하다. 성장이 정체되면 줄어든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 중요해진다. 기대가 어긋나면 실망한다. 정의롭지 못한 법·제도·관행이 원인으로 작용하면 실망은 불신이 된다. 이러한 법·제도·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불신은 분노가 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고, 생각이 다르면 단절한다. 공동체는 분열하고 갈등한다. 정부·법원도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잃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며, 문제는 더욱 심하게 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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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는 시스템을 투명하게 하고 신산업을 만든다. 그러나 특정 단체나 기업이 데이터·설비 등 자원·자본·플랫폼을 독점하면 시장 참여자 간 비대칭이 발생하고, 디지털 불신을 가져온다. 인공지능(AI)시대도 마찬가지다. 데이터·AI시스템을 독점·이용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가 커진다. 과거에는 신뢰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사회였다. 제품·서비스에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 품질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었고, 잘못되면 그러려니 했다. 성장을 위해 양보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뢰 없이 성장할 수 없는 사회다. 기업이 도덕적인지,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을 하는지 본다. 커피원두를 구입할 때 열대지방 노동력을 착취한 것인지 아닌지 본다. 플랫폼기업이 택시운전자, 택배 배송직원, 가입 업체를 어떻게 처우하는지를 본다. 기업도 자신의 고유 자원이나 하청업체 협력만으론 좋은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 고부가가치 사업을 위해선 다른 기업과의 협력, 정부·공공기관 데이터 등 외부자원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AI에 필요한 데이터 등 주요 자원이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AI 알고리즘도 소용이 없다. 데이터 3법 개정 입법 당시 정보 주체를 대표하는 시민단체와 데이터를 이용하려는 기업 간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제품·서비스가 개인정보 등 법령 위반이 없는지 등 꼼꼼하게 살핀다. 공정·평등하다고 인정되던 기준이 의심 받으면서 국민의 눈초리도 매서워졌다. AI시대는 신뢰없이 성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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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기업은 협력업체, 고객 등 이해관계자를 돈벌이 수단이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AI기업의 활동 과정, 제품·서비스의 기획·설계·운용 과정에서 투명성·공정성·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정부는 시장 이해관계자 간 소통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AI시대 갈등 관리도 중요하다.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경제 침체를 가져온다. 이해관계자가 속내를 밝히지 않으면 무엇이 갈등인지 찾기 어렵다. 쟁점이 되는 갈등을 정확히 정의하고, 갈등 당사자를 확정해야 한다. 정치인 등 갈등 외 다른 목적이 있는 당사자를 걸러내야 한다. 이해가 다른 입장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대안을 찾고, 과정과 결과를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 갈등관리기본법이 발의됐지만 법령으로 해결될 사항은 아니다. 갈등관리 종합시책과 매뉴얼, 전문가 양성, 네트워크 구축 등 형식에 집착하지 말자. 갈등 해소에 충분한 정보 공유, 갈등 관리 역량 강화 및 공동체 우선의 시민의식이 최우선이다. 불신이 분노가 되면 이미 늦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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