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 제조업이 상생하자고 양손을 잡고 외치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엔 대부분의 기업이 '힘들다'를 외친다. 상생의 기업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어려운 시기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대기업에서 18년 동안 제조 부문과 연구소에서 일하다 2000년 12월 벤처 붐이 일던 시절에 퇴직했다. 대기업 재직 시절에는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무던히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의 부품과 소재 기술을 얻기 위해 해외 친구와 술자리도 함께하며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눈으로 기술을 배워서 문제를 해결할 때의 행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2000년 하반기에 꿈을 안고 퇴직한 뒤 벤처기업으로 인생이 바뀌면서 연구소 동료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을 개척했다. 2년 동안 하루 평균 2~3시간 자고 휴일 없이 일하면서도 꿈과 희망이 있어서 피곤해도 힘들지 않았다.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름 없는 중소기업의 첨단 기술 제품을 어떤 기업이 쉽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유사한 제품이 대기업에서 생산하고 있던 시기여서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첫 실패의 경험을 딛고 일부 연구원과 함께 대기업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기업으로 이직하게 됐다.
중소기업에서 시장 개척을 위해 제품 개발에 집중했지만 안정되게 대기업으로부터 OEM을 받아 연구비용과 특허출원 등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등 굳이 사업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결국은 독자 사업의 길에 서게 된 지 만 11년이 됐다. 국내 제조기업의 현실은 대기업 위주 산업 구조여서 OEM 기업으로 선택받으면 초기에는 규모의 성장이 가능해 매출도 크고 인력 충원이 많아져 기업이 탄탄해 보인다. 1차로 OEM 공급 경쟁을 돌파한 기업은 안전한 공급망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체 기술이 아닌 임가공 위주의 제조 환경에 끊임없이 가격 경쟁을 강요하고, 멈출 줄 모른다. 1년에 분기마다 가격을 조정한다. 일단 납품이 시작되면 가격의 무한 하락으로 말미암아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란 없다. 더 이상의 가격 하락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바로 신생기업에 기회가 간다. 신생기업과 경쟁하며 또다시 피 말리는, 다시 말하면 마른 수건을 쥐어 짜는 고통과 함께 기업은 2~3년 안에 결국 손을 들고 서서히 파산의 길을 걷는다. 이런 악순환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제품이 시대 흐름에 따라 없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제조 과정에서 사람의 손이 갈 수밖에 없는 제품이 많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동남아시아의 베트남·필리핀 등으로 이전해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이것이 한국의 OEM 전문기업의 현실이다. 대기업은 자기 기술 이외의 타 기술 사용이 거의 어렵다. 그래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OEM 기술로 많이 성장했다. 제조 경험이 많은 OEM 제조기업이 벤처 연구기업과 청년 창업기업 제품을 제조했으면 한다. 그동안 대기업에 의존하던 제조 전문기업이 연구인력을 채용해서 새로운 제품을 창출하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벤처 연구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연결해서 제조하는 새로운 상생의 길이 있다면 제조기업도 살고, 연구기업도 제조공장 투자를 줄이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생의 길이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지원하는 일방적인 상생이 아니라 이제는 중소기업에서 개발된 원천기술을 제조 전문기업에서 생산하고, 그 기술을 대기업에서 사용해 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중소기업이 글로벌을 외치며 더욱 경쟁력이 있는 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11년 독자 창업으로 국내외 특허 약 90건을 등록 및 출원하고, 차별화 제품을 개발해 왔다. 그동안 낙후 기업 또는 전문화 기업과 함께 제조해 왔지만 많은 실패를 했다. 기술 유출, 기술 도용 등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전문기업이 눈을 돌린다면 기업은 얼마든지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중소기업 경쟁력이 곧 글로벌 경쟁력이다.
임대순 마이크로엑츄에이터 대표 lds@micro-actu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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