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7>동반자가 된다는 것

24/7. 언뜻 보면 분수 같다. 실상 '트웬티포 세븐'으로 빗금(/) 빼고 읽는다. 어느 사전은 '하루 24시간, 주 7일'이라는 설명 뒤에 '항상, 언제나'라고 부언했다. 이것은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서비스를 말한다. 우리식이라면 '24시 영업' 표지판이다. 단지 휴일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이걸 더 강조해 24/7/52나 24/7/365로도 표현한다. 52주나 365일 내내 운영된다는 것이니 연중무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셈이다.

평생고객이란 용어는 흔히 쓰인다. 그러나 이것만큼 속 빈 강정 같은 것도 없다. 일종의 광고 문구나 캐치프레이즈다. 이런다고 정말 평생고객을 만들자는 것도, 제품 한번 구입했다고 이리될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경영학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첫 자리는 이 단어 차지일 법하다.

그러나 한번 따져 보자. 이게 가치 없는 허황한 관념일 뿐일까. 여기 기업이 하나 있다. 어찌 보면 그렇고 그런 곳이다. 요즘 이커머스 기업이야 흔하디흔하다. 주 종목도 흔해 빠진 반려동물용품이다. 이름도 '츄이'라니, 우리말로 '씹을거리'나 '질겅질겅'이다.

여긴 나쁜 기억도 있다. 2000년 미국의 페츠닷컴 파산은 아직도 생생하다. 닷컴 버블의 상징이자 최대 실패 사례다. 거기다 이즈음 프라임 멤버십까지 시작한 아마존은 천하통일을 앞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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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용품 온라인 쇼핑몰 츄이 로고 (사진=츄이 홈페이지)

그러나 츄이의 고객은 몇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 첫째는 손 글씨로 된 편지다. 생일카드인 때도 있고 첫 구매를 감사하는 편지도 있다. 이런 식의 편지다. “당신의 털이 잔뜩 난 아기가 이 간식거리를 좋아하면 좋겠군요. 당신만큼이나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토니로부터.”

만일 당신이 이런 편지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감동은 모르겠지만 트위터나 페북에 올리고 친구에게 자랑할 법은 하다. 누군가는 분명 재구매를 했을 테고, 입소문은 덤이다.

스케일업도 투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물류센터 없이 서비스는 나아질 수 없었다. 실리콘밸리 샌드힐 거리에 즐비한 벤처투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조리 퇴짜를 맞았다. 간신히 첫 물류센터를 지었을 때 동부지역은 하루면 배송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당신의 반려동물을 그린 그림을 누가 보내온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이게 단골 상대로 장사하는 동네 가게도 아니고, 가능하기라도 한 일인가. 츄이는 매주 고객을 선정해서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캔버스에 그린 유화를 보내줬다. “당신과 당신의 털옷을 입은 아이가 이 초상화를 좋아하면 좋겠군요. 추신:우리는 당신과 24/7 함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이 기사를 낸 미국 ABC 뉴스는 다음과 같은 부제를 달았다. '츄이는 고객을 향한 다가섬과 간단한 그림으로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지친 지금도.' 결과는 어땠을까. 2011년에 설립된 츄이는 2017년 33억5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에 팔린다. 2년 뒤인 2019년엔 상장되면서 시총은 10조원을 넘겼다.

기업에도 피로감이라는 것이 있다. 정작 시작할 때 고객과 가족이 되고 평생을 가는 신뢰를 꿈꾸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살이에 닳고 꺾이다 보면 이런 꿈은 내려놓기 마련이다. 인생도 방황 끝에 되돌아갈 자리가 있듯 기업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걸 시도하는 누군가를 만난 날 한번 생각해 봄 직하다. 지금 당신이 보는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당신의 첫날, 젊은 날, 꿈 많던 그날의 모습이자 초상일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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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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