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가전 新구독 서비스 바람분다

비스포크 큐커, 수익모델 패러다임 전환
기기값 '제로' 대신 서비스로 경쟁력 높여
밀키트 시장 폭발적 성장..타 업계 예의주시

Photo Image

삼성전자 '비스포크 큐커'가 초기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전시장 수익모델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됐다. 기존 식물재배기 사업모델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킨 가운데 범용 가전인 다목적 조리기기(멀티 쿠커)까지 '기기 값 공짜' 대열에 합류하면서 파급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가전 시장에서 구독 서비스 중심 수익모델은 더 이상 하드웨어(HW)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가전 본연 기능 외에 서비스에 기반한 사용자 경험이 경쟁력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기기 성능 고도화와 함께 사용자 경험을 높일 서비스 개발 요구까지 높아지면서 업계 고민도 깊어진다.

◇렌털과 다르다...'가전 新구독 서비스'

가전시장에 대표적 구독경제 모델은 렌털이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큐커'는 렌털 서비스와 비교해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지불 목적은 다르다. 렌털 비용은 기기 값, 관리 서비스를 포함하지만 비스포크 큐커 사용자는 매월 일정 금액의 간편식 구매 비용만 지불한다.

또 한 달 요금이 정해진 렌털과 달리 비스포크 큐커는 월 하한선(24개월 기준 3만9000원)만 존재한다. 즉 사용자가 간편식 구매를 많이 할수록 제조사에게는 이득이다. 기기 판매가 아닌 간편식 구독 서비스 수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업 모델로 볼 수 있다.

Photo Image
웰스 가정용 식물 재배기 웰스팜

2017년 교원그룹 웰스가 출시한 식물재배기가 비스포크 큐커와 비교적 유사한 사업 모델로 꼽힌다. 웰스는 12~36개월 약정 기간에 맞춰 식물 종자를 정기 구매하면 식물재배기는 무료로 제공한다. 구독경제 확산과 홈가드닝 수요를 타고 고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다만 이 제품은 약정 기간이 끝나면 기기를 반납하는 '공유 렌털' 모델이다. 전통 렌털과 신구독 서비스 중간점에 있다.

삼성전자 행보는 사실상 국내 가전업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모델로 일단 소비자 초기 관심은 뜨겁다. 지난달 28일 제품 출시와 함께 진행한 라이브쇼핑 방송에서 누적 시청자 수는 48만명에 달했다. 삼성전자 가전 역사상 최대 시청자 수다. 약 일주일간 이어진 라이브쇼핑 방송에서도 누적 시청자 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누적 판매량도 수천대를 기록하며 역대 삼성전자 가전 신제품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가전 업계 '차별화' 고민…해답은 '서비스'

Photo Image

삼성전자가 '기기 값 공짜'라는 파격 카드를 내민 것은 현재 가전 업계 고민을 절실히 보여 준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주력 품목은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업체별 차별화가 관건이다. 최근 주목받는 의류관리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등 신가전도 참여업체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다. 결국 가격 경쟁으로 치닫는 가전시장에서 자사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차별화를 꾀하는 게 핵심 과제다.

삼성전자가 가전시장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서비스에 기반한 사용자경험'이다. 세계 1위인 TV조차 더 이상 화질 경쟁이 아닌 콘텐츠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라고 말할 정도다. 특히 스마트홈 플랫폼인 '삼성 스마트싱스'를 내세워 가전을 연동하고 사용자경험을 높일 서비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스포크 큐커는 삼성전자 지향점을 고스란히 녹였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진출한 멀티쿠커 시장에서 가격 경쟁으로 치닫던 기존 판매 구조를 과감히 접고 강점인 서비스를 내세웠다. 스마트싱스 내 맞춤형 요리 서비스인 '스마트쿠킹'을 활용해 8개 협력 식품회사 117개 제품 조리법을 다 담은 게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으로 제품 바코드만 찍으면 자동으로 최적 조리가 구현되는 사용자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반기 호텔신라를 포함해 협업 기업을 더 늘려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비스포크 큐커' 생태계까지 조성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린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가전으로 새로운 구독 서비스 모델을 확장할 가능성도 높다. 가장 유력한 것은 전기레인지, 전기오븐을 포함해 대형 가전인 냉장고까지도 가능하다. 전기레인지와 전기오븐은 이미 '스마트쿠킹' 서비스에서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기기에 조리가 최적화된 제품 라인업만 확보하면 된다. 냉장고 역시 식품 유통업체와 협업해 제품 구매 등 서비스 기반은 마련됐다. 식자재 구독 서비스와 결합해 저렴한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단 비스포크 큐커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는 게 목적”이라면서 “성공 여부를 확인한 뒤 추후 다른 가전으로 확대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기 값 공짜'인데 매출 영향 없을까

삼성전자는 기기 판매 매출을 사실상 포기했지만 오히려 자신감을 보인다. 시장 지속가능성과 구매력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비스포크 큐커 수익은 상당부분 식품업체에 흘러가고 삼성카드와 삼성전자가 나머지를 갖는 구조다. 기기 값 할인 기준인 '24개월간 월 3만9000원 상품'에 가입할 경우 1대당 93만6000원 매출이 발생한다. 삼성전자에 흘러가는 매출은 기기 1대 가격인 59만원에 턱 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는 국내 밀키트 시장 성장세에 주목한다. 2017년 기준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880억원까지 성장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콕족이 늘면서 밀키트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MZ세대와 2인 이하 소가구를 중심으로 집에서도 고품질 간편식을 즐기려는 수요층이 늘면서 마지노선인 3만9000원을 넘어 더 큰 규모의 구매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식품업체의 적극적 움직임도 사업 성공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삼성전자와 협업 채널을 구축한 업체는 밀키트 업계 1위인 프레시지를 포함해 마이셰프, 청정원, 풀무원, 동원, 오뚜기, 앙트레, HY 등 국내 대표 식품기업이 다 모였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고품질 밀키트를 출시해도 조리과정이 잘못될 경우 맛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비스포크 큐커는 해당 식품업체와 삼성전자가 공동 개발한 최적 조리법을 자동으로 인식한다. 조리과정에서 실수가 나올 확률이 제로에 가까워 맛을 담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집 안에서는 물론 캠핑에서도 밀키트 사용이 늘고 있지만 잘못된 조리법으로 맛을 담보하지 못해 제품 구매가 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비스포크 큐커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해당 제품에도 긍정적 영향을 줘 식품업체도 적극적으로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 업계, 파격 선택 동참할까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큐커'를 시작으로 다른 주방가전으로 적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움직이면서 다른 가전사도 상황을 주시한다.

가까운 시일 내 참전이 예상되는 영역이 식물재배기 시장이다. 웰스가 실질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식물재배기 시장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 코로나19로 인한 홈가드닝 수요 증가로 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이다. 웰스 식물재배기 계정 수는 2019년 약 5000개에서 지난해 1만5000개까지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1만개가 늘어 약 3만5000개 계정을 확보 중이다.

LG전자와 SK매직은 나란히 올해 하반기 식물재배기 출시를 예고했다. 이들은 자체 식물공장을 운영하는 웰스와 달리 외부 업체와 협업해 식물종자 구독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구독 서비스를 계약하면 기기는 무료로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주방가전 업계도 삼성전자 모델을 신중히 검토할 가능성도 높다. 기존 주력 렌털 품목인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은 주기적 구매 성향이 높은 서비스와 결합이 어렵다. 대신 주방가전은 식품이라는 고정적이고 주기적 구매 패턴을 보이는 품목을 보유해 구독 서비스와 결합이 용이하다. 전기레인지, 전기오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원액기와 블라인더 등도 유력 후보군이다. 실제 원액기 시장 1위 기업인 휴롬은 자회사를 통해 신선 과일, 채소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 자사 원액기와 신선 채소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사업 모델도 가능하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외연 확장과 수익성 향상을 고민하는 가전 업계에 구독 경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서 “자사 가전과 연결 가능한 서비스 모델만 발굴한다면 기기 판매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사업 확장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