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로봇 등 신산업에 수조원 투자
LG·SK와 협력 강화·능력 위주 인재 영입
'역대급' 실적 기록하며 경영 능력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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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9일로 취임 300일을 맞았다.

취임 직후 자율주행과 로봇 등에 수조원대 투자를 결정하고 모빌리티 생태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정·재계 인사와 잇달아 만나는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세 차례나 미국 출장길에 오르며 미래 신사업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과 판매 전략을 점검했다.

8일 현대차그룹과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과감하고 선제적 투자 발표를 이어갔다. 기업 가치가 11억달러(약 1조2563억원)에 달하는 세계적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지난해 12월 본계약 체결 후 6월 인수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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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스팟(왼쪽)과 아틀라스.

현대차그룹의 로봇 업체 인수는 전통 완성차 기업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잘 보여준다. 정 회장은 사재 2490억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하는 등 이번 인수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취임 후 두 번째 미국 출장길에는 보스턴다이내믹스 본사를 직접 찾아 스팟과 아틀라스, 스트레치 등을 살펴보고 로봇 산업 미래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미국에 8조원 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지난 5월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전기차 생산과 설비 확충, 수소,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총 74억달러(약 8조4604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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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대규모 미국 투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과 바이 아메리칸 전략, 전기차 정책 등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앞서 정 회장은 4월 첫 번째 미국 출장길에서 전기차 현지 생산과 공장 증설 여부 등을 검토했고, 이를 토대로 투자 규모와 범위 등을 확정했다.

정 회장은 LG와 SK 등 국내 주요 그룹사와 협력 강화도 적극 추진했다. 지난달 말에는 LG와 추진한 인도네시아 배터리셀 공장 설립 계획이 결실을 맺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연산 10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배터리 회동에 이어 올해 3월에는 수소 동맹도 맺었다. SK 사업장 차량의 수소차 전환과 인프라 구축 등에 협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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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철저한 능력 위주 인재 영입은 기아 사장 시절부터 이어온 정 회장 경영 철학이다. 취임 후 단행한 첫 임원 인사에서 신규 임원 승진자 30%를 신사업과 신기술·연구개발(R&D) 출신으로 채웠다. 이어 4월 그룹 모빌리티 기능을 총괄하는 TaaS본부를 신설하며 본부장에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를 영입했다.

경영 성과도 즉각 나타났다. 올해 제네시스와 전용 전기차 등 신차의 성공적 출시로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 분기 매출은 사상 처음 30조원을 넘어섰고 기아도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속에서 이뤄낸 깜짝 실적이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는 상반기 역대 최고 판매 실적을 경신했다.

안정적 생산력 확보를 위한 무분규 임단협 타결도 주요 성과 중 하나다.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어왔던 과거와 달리 현대차 노조는 올해 여름 휴가 전 3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을 타결했다. 다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기아 임단협과 현대차 사무직 노조 등장은 경영상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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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0/2021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을 대신해 헌액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정 회장 경영 능력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영국 유력 자동차 전문지 오토카는 6월 2021 오토카 어워즈에서 정 회장에게 '이시고니스 트로피'를 수여했다. 2018년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사장, 2019년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 2020년 하칸 사무엘손 볼보 최고경영자(CEO) 등이 수상한 최고 영예의 상이다.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은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네 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2018년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 간소화를 시도했으나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시장 반발로 무산됐다. 재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코스피 상장 이후 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여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 등도 풀어야 한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