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진출 보조 맞춰 공격 투자 결단
美·유럽 공장·인력 등 현지화 전략 박차
해외업체 러브콜에 기술·인력 유출 우려
정부 지원 확대로 산업 자생력 강화 필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전기차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국내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업체에도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북미, 유럽 등 주요 시장에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하려는 전기차 업계의 전략에 발맞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이에 국내 소부장 업체들도 고객사 지원을 위해 해외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배터리 산업 성장에 따른 소부장 기업에 동반 성장할 기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지만 해외 진출에 따른 국내 배터리 기술 및 노하우, 인력 등 유무형의 가치가 해외 유출될 가능성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럽 이어 미국으로' 소부장 진출 러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협력사인 엠플러스는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 법인을 설립했다.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세운 2공장에 배터리 조립 장비를 공급하고 장비 설치 및 유지 보수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엠플러스는 법인 설립에 이어 인력 충원을 준비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추가 3·4공장을 세우고, 포드와 합작공장을 건설할 것으로 확실 시 돼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유일에너테크는 최근 미국에 지점을 세웠다. 이 회사 역시 핵심 고객사인 SK이노베이션에 보다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SK이노베이션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에코프로비엠도 미국 조지아주 법인 설립 후 미국 양극재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며, 전해액 업체인 엔캠은 LG와 SK 공급을 위해 9월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최근 배터리 소부장 업체들의 해외 진출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지난해 헝가리에 동박 공장을 완공했으며, 음극재 업체인 동진쎄미켐은 스웨덴에 첫 음극재 생산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티리얼즈는 헝가리에 동박 슬리터 생산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밖에 전해질 업체인 엔캠은 폴란드 공장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이며, 분리막 제조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폴란드 분리막 연간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배터리와 동반 진출하는 소부장
소부장 업체들이 해외 투자를 강화하는 이유는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현지화 전략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급속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전기차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독일은 전년 대비 252%가 급증했으며, 이탈리아는 241% 상승했다. 프랑스도 179% 성장했다. 유럽이 중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시장 확대에 힘을 쏟으면서 미국 시장 또한 들썩이고 있다.
주요국들의 전기차 시장 보급 확대 정책에 배터리 수요는 늘고,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유럽에 이어 미국으로 투자 시선을 옮기고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착공한 데 이어 삼성SDI도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를 검토하고 있다.
국내 소부장 업체들은 배터리 업체들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는 산업의 특성상 현지 생산 및 공급이 필수다. 특히 배터리는 화재 가능성 때문에 물류 제약이 상당하다.
또 국내 배터리 소부장 업체의 해외 진출은 신규 고객사 발굴의 기회다. LG, 삼성, SK 등과 거래하며 기술력을 검증 받았기 때문에 다른 배터리 고객사 발굴이 유리하다.
실제로 유럽 배터리 자립의 상징과 같은 노스볼트는 중국산 장비 차질로 애로를 겪자 한국산 배터리 장비로 교체하려는 준비 중이다. 노스볼트는 코로나19 상황임에도 인력을 출장보내 한국 배터리 소재와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배터리를 제조하려는 업체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배터리를 제조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 배터리 소부장 업체들에는 모두 사업 기회가 된다.
◇배터리 소부장, 성장 기회지만…
국내 배터리 소부장 기업의 해외 진출은 국내 산업 및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배터리 업체들의 세계 시장 공략에 따라 소부장이 성장하면 국내 배터리 산업은 보다 건강한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
핵심 장비나 소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달리 전방과 후방 산업계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진출이 늘어날수록 국내 투자 위축과 해외 기술 및 인력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는 국가 핵심 산업으로 부상해 각국이 현지에 투자를 유치하려는,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힘을 쏟고 있다.
때문에 핵심 인력과 기술을 보호하는 한편 국내 산업의 지속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기업과 소부장 업체들의 건강한 수주 생태계를 만들고,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R&D와 세제 및 인력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차세대 소부장 제품 개발을 확대해 소부장 자생력을 키우고, 신규 제품 공급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배터리 소부장 업계 대표는 “한국 소부장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차세대 소부장 R&D 지원과해외 진출 기업에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 배터리 생태계 전반의 전문인력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