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전후 에피소드.
#1. 1918년 9월 러시아 볼세비키 소속 연해주의 하바롭스크 시장은 러시아 백군과 일본군에 잡혀 처형됐다. 그녀의 유언은 열세 걸음을 걷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선은 13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의 해방을 갈망한다.” 연해주에서 한인 2세로 태어나 조선 독립을 위해 힘쓴 김 알렉산드리아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목숨 건 투쟁을 한 이유는 뭘까.
#2. 1919년 2월 3·1운동을 주도하던 민족대표들은 이완용에게도 참여를 권했다. 이완용은 “나의 지난 행적을 보면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무안한 일이다”라고 거절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 고발하진 않았다.
#3. 민족대표 최린은 조선인 고등계 형사 신철이 서울 모처에서 인쇄하고 있던 독립선언문을 빤히 보고 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회유했다. 신철은 “이런 일이 성공하리라 생각하오? 나 하나 입을 다물어도 된다면 그리하리다.” 그는 휴가를 내고 도주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문 끝에 자살했다.
#4. 조선왕조나 일제강점기나 처지에 차이가 없을 법한 사람도 만세운동에 나섰다. 한금화는 명주 자락에 '기쁘다. 삼천리강산에 다시 무궁화가 피누나'라는 혈서를 써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기생이었다.
2·8 독립선언으로 물꼬를 뜬 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 중국, 미국 등지에서도 해외동포들이 만세운동에 적극적·소극적으로 가담했다. 일본은 시위 규모와 방식에 놀라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 독립이 결정된 것은 아닌지 문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3·1운동은 오직 인적자원에만 의존한 운동으로, 8·15 광복의 정신적 인프라가 됐다. 인적 자원의 적극적·소극적 협력은 인공지능(AI) 성공을 위해서도 필수요소다.
데이터·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외 인적자원의 양성과 활약이 관건이다. 그런데 데이터와 AI 인재가 외국기업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원인이 뭘까. 한번 취업하면 평생 다닐 수 있는 안정적 직장 신화가 무너졌고, 낮은 급여와 인센티브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 많은 기업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창의력을 존중받지 못하는 서열식 기업문화도 남아 있다. 신규 연구개발(R&D)을 막는 규제가 많고, 장비·데이터·실험기기 등 연구기자재가 부족하며, 연구 부정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행정 처리 부담도 늘고 있다. 인재 유출 증가는 동료와의 아이디어 교환 등 소통 기회도 줄이고 있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과학도의 자괴감도 한몫하고 있다.
해외 인재 유치도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브레인풀 플러스'(BP+) 등 인재유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복수국적 허용, 연구비 지원 등 혜택을 부여하고 있지만 한국의 고용시장 불안정, 연구투자 환경 미흡, 국내 인재들의 반감, 강한 민족의식, 비싼 물가와 나쁜 교육환경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더욱이 경제전쟁의 핵심이 기술인력 확보 싸움인 탓에 산업스파이로 오해받기도 쉽다.
대응책은 무엇일까. 우수 인력에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면서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할 일이 아니다. 해외로 나간 인재를 적대시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지금은 두뇌 유출 시대가 아니라 두뇌 순환 시대다. 외국에 있더라도 고국을 도울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을 생각하는 많은 글로벌 전문가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아이디어,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협력 결과가 그들이 소속된 기관·기업의 발전과 상생할 수 있어야 하고, 영업비밀이나 특허 등을 침해해서도 안 된다. 외국인 인재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함께 연구하고 싶은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 AI 시대를 위해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성 있는 글로벌 인재 협력만이 사람 중심의 AI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가 아니라 온라인이고 과학기술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