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日 수출규제 2년…소부장 자립·기술독립 쉼 없이 달렸다

솔브레인·이엔에프테크·램테크 '불화수소' 국산화 매진
일본 수입 의존도 2019년 43.9%서 올해 13%로 떨어져
美 듀폰·日 TOK 등 '한국 내 생산'으로 공급망 다변화
불화폴리이미드·3대 품목 외 연구개발도 한창

Photo Image

#2019년 7월 1일. 일본은 “한국으로 수출되는 전략 물자가 제3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3개 소재 수출을 전격 제한했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를 뒤흔들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품목은 고순도 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다. 모두 반도체에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특히 첨단 미세 공정에 꼭 필요하다. 이 품목을 일본이 수출 제한하면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모두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시급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우선 반도체 소재 공급망을 견고히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반도체 생태계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자, 지역, 국가를 다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급자 다변화는 일본 수입에 의존하는 소부장을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국산화'를 포함한다. 지역 다변화는 해외 기업의 국내 생산 체계를 확보해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국가 다변화는 수입 국가를 늘려 일본 수입 비중을 감소시킬 수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런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 제조 생태계를 확립할 수 있다”면서 “특정 공급자·지역·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밸런스(균형)를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2년은 국내 소부장 산업의 허약한 생태계를 확인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의 과정이었다. 그 성과와 남은 과제를 점검했다.

◇공급자 다변화 결실 '국산화'…핵심 소재 일본 의존도↓

수출 제한 3대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는 대표적인 국산화 성공 사례이자 공급자 다변화의 결실이다. 일본 수출 규제 직전 대비 상당 부분 의존도를 낮춘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 1~5월 사이 일본 불화수소 수입 의존도는 43.9%였다. 그러나 올해 1~5월 의존도는 13.0%까지 낮출 수 있었다.

불화수소 국산화 선봉은 솔브레인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램테크놀로지, SK머티리얼즈 등이다. 솔브레인은 일본 스텔라 불화수소를 수입, 정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공급해왔다. 수출 규제 이후 중국에서 원료인 무수불산을 가져와 직접 불화수소를 생산했다. 이엔에프테크놀로지도 일본 모리타 불화수소로 공정용 식각액을 만들어 공급해오다 수출 규제 이후 고순도 불화수소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램테크놀로지도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 SK하이닉스에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수출 규제 2개월 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향 일본산 불화수소를 대체해 '불화수소 국산화 3인방'이라고 불렸다.

불소와 가스 처리 기술력을 쌓아왔던 SK머티리얼즈도 수출 규제 직후 처음으로 기체형 불화수소(에칭가스) 제조에 뛰어들었다. 1년이 되지 않아 초고순도 에칭가스 양산을 시작해 '탈 일본'에 기여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지역·국가 다변화 시동 'EUV 포토레지스트'

모든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 안에서 반드시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다. EUV 포토레지스트 경우 아직 국산화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지역·국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일본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었다.

2020년 1월 미국 화학소재기업 듀폰은 2800만달러를 투자, 천안에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 및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나서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를 성공 시킨 대표 사례다. 물론 EUV 소재 수요가 큰 한국에 직접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게 유리하다는 듀폰의 전략적 판단도 한몫했다.

'탈 일본'이 목표지만 이는 수입 의존도를 낮춰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함이다. 해외 기업의 국내 생산 시설 유치는 일본 기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TOK(도쿄오카공업)는 2020년 인천 송도에 있는 TOK그룹 티오케이첨단재료에서 EUV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한다. 국내에서 직접 생산해 제품을 공급하는 만큼 일본 수출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일종의 우회 전략으로 대표적인 지역 다변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TOK는 EUV 포토레지스트를 납품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한국 내 생산' 요구에 적극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JSR도 벨기에 연구센터 IMEC와 설립한 합작법인을 통해 국내에 EUV 포토레지스트를 우회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가 다변화 전략에 해당한다. TOK·JSR·신에츠 등 기업의 EUV 포토레지스트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국내에서는 동진쎄미켐이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EUV 포토레지스트 일본 수입 의존도를 규제 전 91.9%에서 현재 85.2%까지 낮췄다.

◇불화폴리이미드도 국산화 잰걸음…3대 소재 외 일본산 대체도 한창

불화폴리이미드는 다른 수출 규제 품목보다 여전히 일본 수입 의존도 높은 편이다. 수출 규제 전 일본 수입 의존도가 93.7% 였다가 지난해 93.9%로 소폭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93.6%까지 내려갔지만 전반적으로 횡보합 상태다.

그러나 국산화가 한창인 만큼 불화폴리이미드도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불화폴리이미드 생산을 시작했고, SKC가 공장 신설과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스미토모에서 수입하고 있는 불화폴리이미드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국내 공급망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일부 양산이 시작된 만큼 점진적으로 공급망 다변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는 비단 수출규제 3대 품목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반도체 웨이퍼 세정이나 식각 공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염화수소(HCI)는 최근 백광산업이 삼성전자와 함께 국산화에 나섰다. 일본 화학업체 토아고세이, 독일 산업가스전문기업 린데가 과점 공급하던 소재다. 동진쎄미켐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했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 D램 생산라인에 공급하고 있다.

화학기상증착(CVD) 장비 챔버 내 잔류물을 제거하는 세정가스인 삼불화질소(NF₃)는 일본 간토덴카공업이 천안에 신공장을 가동한다. 일본 화학제품 전문업체 아데카는 Cp하프늄을 전주에서 생산한다. Cp하프늄은 회로 누설 전류를 차단하는 고유전체(High-K) 박막을 씌울때 사용하는 전구체다.

이 같은 행보는 반도체 소부장 공급망 전반에 국산화와 안정적 공급 다변화 체계를 갖춘다는데 의미가 있다. 국내 반도체 공급망 체질을 탄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시들해질 수 있는 반도체 소부장 공급망 강화 전략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다시 한번 힘을 얻고 있다”면서 “꾸준한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이어나가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