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전략 수립부터 성과 활용까지 폭넓게 연구
양자기술 포함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선제 대응
출연연, 지역 주도 혁신 성장 뒷받침할 수 있어야
우주정책센터, 정책 오픈 플랫폼으로 운영 추진
문미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기정책연) 원장은 '헬퍼(helper)'를 자처했다.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 기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문 원장은 국회의원,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과기정책연의 정책 연구와 제안에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과기정책연은 그동안 경험한 곳과는 다르다. '과기정책'이라는 공통분모를 갖지만 정책을 제안하는 곳과 실제 결정하고 수행하는 곳의 차이는 현격하다. 문 원장은 현재 소속 연구원들과 소통하며 자신이 효과적으로 과기정책연을 도울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했다. 목표는 '싱크탱크'로서 과기정책연이 가지는 존재감을 확대하는 것이다. 과기정책연의 존재를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앞으로의 과기정책 방향을 물어보러 오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월 19일 취임, 임무에 나선지 5개월여를 지낸 문 원장을 만나 과기정책연을 도울 방안, 계획 등을 들어봤다.
-과학기술, 관련 정책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안다. 국회나 정부 활동 등 알려진 것 이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 스스로 과학자였다. 초전도체를 전공했다. 1996년 물리학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써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렸다. 당시 국내에서 실험한 물리연구로는 처음 있는 성과였다. 지도교수도 칭찬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 과학연구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자기소용돌이 이론으로 초전도체의 전자기 물성 데이터를 분석한, 상당히 의미 있는 연구였다.
이후 연세대 연구교수를 지냈는데, 그러던 중 만난 것이 'WISE(Women into Science&Engineering)'다. 내가 먼저 나서서 발을 들였다.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나오고 여성과기인 정책이 확대되는 시점이었는데 그때 작은 과제를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도전적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과학연구만 했지 정책을 몰랐는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개인 관심을 사회 가치로 연결하는 경험을 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전 의정 및 정책 활동을 했을 때와 현재 과기정책연을 이끄는 입장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이전부터 과기정책연과는 접점이 많았는데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기정책연 정책보고서를 많이 접했는데 제언 내용이 딱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청와대나 정부 국회가 과기정책연과 멀리 떨어져서 서로 경원시하는 느낌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과기정책연이 가진 부분이 정말 많은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조차 과기정책연과 멀다고 느끼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과기정책연 역할을 잘 활용하면 나라의 많은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과기정책연에는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하는 곳이 있고 R&D 성과를 어떻게 경제·사회적으로 활용해 변화를 이끌어낼지 연구하는 곳도 있다. 산업이나 기업 성장, 인재 양성, 문화, 복지 등 안 걸리는 영역이 없다.
심지어 과기정책연 연구는 외교와도 직결된다. 우리가 과학기술로 발전을 이룬 경험을 세계에 전파하면 우리나라가 외교전략을 펼칠 때에도 도움이 된다.
안타깝게도 지난 원장들이 이룬 부분이 정말 많고 과기정책연 역할도 많았지만 바깥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 기조를 이어나가면서 과기정책연이 밑그림을 그린 과학기술혁신이 국가혁신으로 이어지는 정책연구를 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와도 정책 파트너가 되도록 대화를 시작했다.
-원장 취임 당시 한 발 앞서 제안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기정책연은 이미 한 발 앞서 정책을 제안해 왔었다. 과학기술 혁신에 기반을 둔 공적개발원조(ODA)만 해도 과기정책연이 관련 논의 초창기에 주장했다. 지금은 세계에 널리 퍼져 통용되고 있다. '리빙랩' 개념도 과기정책연이 우리 사회에 도입했고 바이오기술에 대한 규제도 선제적으로 준비했다. 그동안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먼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사실 우리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이슈가 터져 나오기 전에 발 빠른 제안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손해를 보는 일이다. 아직 세간의 관심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선제적 정책 제안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앞서 든 예들도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그럼에도 준비해야 한다. 시대가 흘렀을 때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양자기술을 포함한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미리 대응하는 정책을 준비하고자 한다. 양자컴퓨팅은 향후 컴퓨팅 패러다임을 바꾼다. 양자통신도 매우 중요하다. 아직 기술이 성숙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향후 문제가 된다. 기술 진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과거에는 정책을 준비하면 10년 뒤 효과가 나오는 반면에 지금은 3~5년이면 관련 결과가 나오고 평가를 받게 된다. 서둘러야 한다.
'미래 사회연구'도 중요하다. '국민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우리가 갖춘 것을 파악해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기술 진화를 따라가는 일뿐 아니라 미래상을 혁신의 지향점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의 중요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역할도 역시 중요하다. 이 경우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요 주변국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과기 정책을 바꾸면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호작용을 살펴, 대응하는 것 역시 과기정책연 일이다. 물론 이 경우는 당면한 현안인 만큼 한 발보다는 '엄지발가락' 정도 앞서서 해야 한다.
-제안된 정책의 실행·실효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문제를 타개해야 할지.
▲많은 곳에 몸담다 보니 신기하게도 각 영역에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청와대에 있을 때는 어젠다가 빠르게 처리된다. 1년치 일이 하루에 집중된 듯이 빠르게 흘러간다. 워낙 다양한 일이 많은 과정을 거쳐 올라와 한 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이 정부 부처에 가면 조금 느려진다. 연구원에서는 미래까지 당겨오기 때문에 더 느려진다. 시간의 상대론이다.
정부 출연으로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 26개나 되고 인력이 수천명에 이르는데 왜 이들이 내놓는 정책 반영이 어려운지 해답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실제 제도 실현까지 합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과학기술원 등은 국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의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설립되고 이룬 것들이 국가 성장을 이끌었다. 다만 그때 전략만으로 유효한 시간은 끝났다. 1986년 삼성 종합기술원이 설립되고 민간의 시대가 왔다. 이들은 돈도 많고 우수한 인력 역시 흡수하고 있다. 민간 기업 주력사업 역량이 정부 출연기관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아직은 갈 길을 못 찾은 느낌이 있다.
출연연이 국가 R&D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전략과 지역 성장과 함께 글로벌 사회를 위한 R&D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 일본 수출규제가 발생했을 때 국가적 소부장 대책에서 과기 출연연이 함께 운영하던 소재협의체가 문제해결 플랫폼이 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경험을 잘 살려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지역이 자기 지역 성장 방안을 설계할 때 과학기술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출연연이 지역주도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는 결합력을 갖출 수 있으면 좋겠다. 글로벌 STI, 과학기술 ODA 등에서도 출연연이 국제 R&D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도 좋다. 역할 진화가 필요하다.
-과기정책연 내 우주정책센터 유치가 한동안 화두였다. 관련 계획은.
▲정책 오픈 플랫폼으로 우주정책센터를 운영하려고 한다. 우리가 모기관이기는 하지만 둥지 역할만 하게 된다. 독립성을 가진 센터장이 각계 정책 전문가들과 협조해 진취적이고 모험과 도전을 이끄는 정책을 준비하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당연히 다른 기관 도움도 받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물론이고 한국천문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ADD) 도움도 받는다.
우주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정부에서 그랬다. 노무현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도 달탐사 공약을 내세워 우주 연구와 산업에 판을 키우고 기회를 열었다. 시작하지 않는 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단 시작할 수 있어야 어떻게든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우주도 몇 십년씩 장기적으로 진행되던 일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스페이스X를 비롯해 민간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우주위원회에 민간위원이 적극 참여하도록 개편하는 등 발전이 있었다. 다만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 다부처가 관여되면서 민간이 적극 참여하는 정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우주정책센터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미옥 과기정책연 원장은
성모여고와 포항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물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지냈고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며 과기정책에 눈을 떴다. 이후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몸을 담았고 대통령 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다. 과기정통부 제1차관으로도 일해 국회와 청와대, 정부를 모두 경험한 과기정책 전문가가 됐다. 올해 초 과기정책연 원장에 임명됐다.
세종=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