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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림'국회. 개원 첫돌을 맞은 21대 국회를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다. 정말로 많은 법안이 1년 동안 발의됐다. 우선 건수에서 추종을 불허했다. 헌정 기록까지 갈아치울 수준이었다. 법안심사도 기록적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등에서 진행하는 심사시간을 놀라울 정도로 단축시켰다. 법안처리도 마찬가지다. 여당 주도로 속전속결이었다. 국회 올림픽이라는 국제대회가 있다면 대한민국 21대 국회는 발의건수, 심사시간, 처리건수 등 '삼관왕'은 떼놓은 당상이다.

문제는 '날림'이라는 점이다. 좀 비약해서 발의도 날림, 심사도 날림, 심지어 통과조차도 날림이었다. '신중하게 발의하고 꼼꼼하게 심사하며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법 제정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발의 건수부터 석연치 않다. 21대 국회 1년 기점으로 발의된 법률안이 1만69건이었다. 같은 기간 20대 국회 발의건수는 7000여건이었다. 4년 전체로 2만3047건이었다. 21대 1년 만에 발의한 건수가 20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365일로 단순 계산해도 하루에 27건씩 발의됐다. 컨베이어 벨트 공장 수준으로 '찍어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사시간은 빈약해졌다. SBS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1대 국회 상임위 평균 법안 회의시간은 147.1분이었다. 20대 171.1분, 19대 176.4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법안심사소위도 다르지 않다. 17대 평균 22.7분에서 20대 때 13.1분으로 줄었고 21대는 10분대로 더 떨어졌다. 데이터를 빌리지 않더라도 발의건수가 늘면 심사시간은 줄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이다. 법안처리도 21대는 달랐다. 처리법안 가운데 80%가 민주당 발의였다. 압도적이다. 20대 당시 1당이던 민주당 점유율은 45.8%였다. 19대에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 점유율은 49.2%였다.

'날림' 삼관왕 결론은 처리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과잉 입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법체처가 의원발의법안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까지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을까. 그렇다고 국회의원만 탓할 수 없다. 평가의 잣대 때문이다. 공천에 영향을 주는 의원평가 대표 척도는 입법 실적이다. 시민단체 의정활동 평가에서도 입법건수는 무시 못 하는 요인이다. '입법 건수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가가 질보다는 양에 맞춰진 상황에서 '꼼수'라고 써야 할 입장이다. 더구나 국회 존재 이유는 입법이다. 활발한 입법 활동은 국회의원 의무다. 입법 활동에 충실한 국회의원을 싸잡아 무작정 비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폭주성' 입법발의를 우려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정부조직이 비대해진다는 점 때문이다. 법안이 많아질수록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도 덩달아 커진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법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권한은 더 커지게 된다. 입법부인 국회가 법 제정을 남발하면 정부조직이 연쇄적으로 반응해 결국 '큰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커지는 정부조직에 비례해 효율성은 떨어진다. 게다가 법은 진흥도 있지만 대부분 규제다. 사회역동성 면에서는 역효과가 크다. 겉으로는 규제 완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정부 조직의 트리거 역할로서 국회가 중요하다. 발의한 입법에 대해 생산자인 국회의원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국민은 결코 '입법기술자'를 만들기 위해 국회에 권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