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Fit). 굳이 우리말로 하면 '어울리는 정도'이다. 별거 아닐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숨은 조정자다. 생산성이란 걸 보자. 설명 이론으로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적자본이다. 더 양질의 이것을 확보하고 있으면 생산성은 높아지고 더 높은 임금으로 보상받는다.

다른 시각도 있다. 인적자본이 중요하되 다가 아니다. 개인 역량이 기업의 필요성과 잘 '피트' 돼야 생산성으로 발현된다. 그러니 인적자본은 드러난 것이지만 '피트'는 무대 뒤에서 암약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에게만 피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까짓 거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것을 어수룩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도 줄줄이 인수합병(M&A) 후 저성과로 쩔쩔매는 형편이다.

어느 전장기업을 한번 보자. 미국 다트머스대 비자이 고빈다라잔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혁신, 다른 하나는 기민한 리더십이었다. 개발팀이 대담한 목표를 세우면 경영진은 위에서부터 회사 전체의 변화를 조정했다. 조직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사고를 우회하고 새 논리를 제품에 통합되게 허용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이 방식을 두 쌍의 네 가지 특징으로 묶어 설명한다. 우선 프로젝트 레벨에서는 급진적 목표, 유연한 조직 설계, 신구 조직의 역량과 자원 교차, 기존 사고와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이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변화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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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경영진은 다른 방향에서 이 혁신에 조응한다. 첫째 기업의 미래는 항상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라 인식했다. '미래는 다른 곳에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는 많은 걸 말해 줬다. 역량은 개발도상국으로 돌렸다. 연구개발(R&D)도 신시장에 초점을 맞췄다. 심지어 로컬팀이 본사와 충돌하자 로컬팀 손을 들어 줬다.

모든 기능을 절반의 가격과 3분의 1 비용으로 제공한다는 건 누가 봐도 급진적 목표다. 자원은 지금의 수익 흐름이 아니라 미래 수익을 보고 흘러야 한다는 건 통념에 거스르는 것이었다. 단기 수익 목표가 혁신 목표를 흔들어선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생그룹과 기존 팀들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기존 부서와 신생팀 간 협력은 성과 목표 및 인센티브로 수용, 마찰을 줄였다. '신흥 시장 프로젝트 팀을 얼마나 지원했나'를 연간 성과 검토에 반영하기조차 했다.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의 성장은 이렇게 혁신으로부터 왔다. 이 방식은 '사라스(Saras)'로 불렸다. 산스크리트어로 '적응'(Adaptable), '융통'이라는 뜻이다. 결국 비결은 시장과 역량, 실행과 전략, 신생팀과 기존팀의 '피트'인 셈이었다.

기업의 혁신 사례를 보면 설명 못할 일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왜 혁신은 지속되지 않는가이다. 마치 조조·유비·손권이 죽고 동시대 영웅들이 죽은 후 삼국지가 그만그만한 이들의 무대로 전락하는 것처럼 한때의 혁신기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춰선다. 퀜틴 윌슨의 '멋진 자동차들'이란 도감을 한번 보라. 그 멋진 디자인이 즐비하던 기업도 곧 시들고 창의성을 잃는다.

가려진 차원에 숨겨진 혁신 조정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피트를 잘 유지하고 루틴을 잘 가꾸라. 이것 없이 혁신을 제 손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분명 과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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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