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만큼 말 많은 동네가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 그대로다. 그만큼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자가 많다. 정치권, 청와대, 정부, 기업 저마다 동상이몽을 꿈꾸는 분야가 방송 바닥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갈려 늘 시끄럽다. 시장 보다는 정치 논리가 앞서다보니 목소리 큰 쪽이 이긴다는 선입관도 강하다. 그나마 '한가로운' 동네가 IPTV·케이블TV·위성방송을 아우르는 유료방송 시장이었다. 정치입김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도 시장논리가 지켜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조용하던 유료방송 시장이 떠들썩하다. 여러 이슈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프로그램 사용가격을 놓고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CJ ENM은 IPTV사업자 상대로 '25%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바일 채널의 실시간 방송은 별도로 협상해야 한다고 강공을 날렸다. 홈쇼핑채널의 수수료 분쟁도 불거졌다. 홈쇼핑방송 대가인 채널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다. 홈쇼핑의 방송발전기금도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기금 산정기준에 방송을 통한 매출뿐 아니라 온라인·모바일 매출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송채널 사용 대가 논란은 사실 연례행사다. 매년 협상시기와 맞물려 눈치 싸움과 함께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 왔다.
올해는 더욱 격해지는 분위기다. 그만큼 유료방송을 둘러싼 대외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미 산업계는 패러다임 변화라는 '쓰나미'로 얼이 빠져 있다. 가입자가 매년 줄고 이익률은 날개 없이 추락 중이다. 시장은 정점을 찍어 나락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변방 서비스에 불과했던 온라인 동영상(OTT)업체는 공격적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주인 행세에 나설 태세다. 매각이 가장 큰 화두일정도로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이미 대다수 업체는 인수합병 회오리 속에 '공생'에서 '각자도생'으로 생존 방법을 갈아탄 지 오래다.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곳간이 비어가면 기업은 절박해진다. 안면몰수하고 다투는 배경은 하나다. 결국 '돈' 문제다. 프로그램 사용료, 홈쇼핑 수수료, 기금 문제 모두 수익과 맞닿아 있다. 성장하는 시장이라면 비전과 잠재가치라도 보고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 과거처럼 태평성대가 아니다. 한 푼이라도 더 받거나 아니면 내지 않는 게 유리하다. 철저한 비즈니스 셈법만 있을 뿐이다. 벼랑 끝 기업이 이익 앞에서 양보할 리 없다. 시나리오도 예측 가능하다. 막판까지 몰리면 '방송중단'을 볼모로 배수진을 칠 가능성이 높다. 방송중단이라는 마지막 카드가 나오면 정부로 책임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업끼리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발 빼겠지만 시늉일 뿐이다. 정부가 물밑에서 참여하고 기업은 실랑이를 거듭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협상이 이뤄진다. 매년 반복된 패턴이다.
올해는 발상을 바꿔 보자. 솔로몬의 해법이 필요하다. 정부가 실타래를 푸는 건 맞지만 현상과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방송은 규제산업이다. 채널허가에서 운영, 서비스 내용, 심지어 수신료까지 정부가 건건히 관여한다. 평소에는 규제를 앞세워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껄끄러운 사안에서 해결하는 시늉에 그친다면 믿음이 갈 리 없다. 결국 과감한 규제개혁이다. 당장 소비자가 내는 유료방송요금부터 손봐야 한다. 자유로운 요금경쟁은 해법을 위한 첫 단추다. 프로그램 사용료와 홈쇼핑 수수료를 위한 정확한 대가 산정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결국 기업 몫이다. 기업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 유료방송 규제라는 본질을 놔두고 수수료라는 현상만 집중해 봐야 수박 겉핥기식 방편일 뿐이다. 전체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애정 어린 시선이 없다면 솔로몬 왕이 와도 해법은 쉽지 않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