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공공의 실패

신은 공평하다. 한 사람에게 권력·명예·돈 모두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어길 경우 탈이 난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부와 권력을 모두 욕심냈지만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재벌 기업인이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들이켰다.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취한 정치인의 말로 역시 좋지 못했다. 명예스러운 자리에서 돈을 좇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은 '국민의 적'이 됐다. 국가의 녹을 받아 먹고 사는 일부 지방 공무원도 부동산 투기 혐의를 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 공익 대신 사익을 취한 대가다. 몇몇 국회의원은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세종시 이주 공무원과 공공기관 특별공급(특공)은 화룡점정이다. 공공 부문에 종사한다는 근거로 아파트를 손에 쥐었고, 일부는 수억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실효성 있는 감시 기제와 장치는 없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결과적으로 '예산은 주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웃픈'(우습지만 슬픈) 가설이 현실이 됐다.

일련의 사건은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학자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뷰캐넌은 정치와 행정을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로 접근한다. 그는 '공공의 실패'를 예견했다.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독과점 폐해, 경제적 불평등 같은 시장 실패와 유사한 사례로 바라봤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 등 공공 부문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가정과 전제가 토대다. 공공 부문 확대가 대국민 서비스 제고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방만한 적자 경영과 비효율성은 공기관 등 공공 부문의 고질적 아킬레스건이다. 여기에 더해 2021년 우리 공공 부문에 '공익의 사유화'라는 난제가 던져졌다. 내부정보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우선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030세대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궤를 함께한다. 이들에게 기회는 공공의 것,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인식된다. 이들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파워를 과시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를 비롯한 신진 세력의 맹활약도 세대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기회의 문을 닫으려는 기성세대를 향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어쩌면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4060 기성세대를 향해 보내는 절박한 구조신호(SOS)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각 영역은 점점 닫혀 가고 있다. 일부 재벌2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폐쇄적 멤버십 커뮤니티가 구조화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일반화다. 이 때문에 이른바 보통 사람들, 특히 2030세대는 링에 올라갈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정상적 경제 활동으로 반지하의 기생충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계층 이동, 신분 상승이라는 희망과 꿈을 접게 하는 게 2021년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청춘들은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이른바 영끌, 빚투를 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의 선택은 '인생 한방'이다. 20년 전 로또복권은 오늘날 암호화폐와 주식으로 대체됐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어서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평생 벌어도 수도권에서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걱정에서다.

시장 실패는 기업과 가계에 충격을 준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역시 커진다. 문제는 공공의 실패가 낳을 파장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 실패'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LH 사태는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불과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도 특공에 이어 터져 나올 공공의 실패 사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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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정치정책부 부장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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