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의 '제1 벤처 붐' 이후 20여년 만에 '제2 벤처 붐'이 도래했다. 세계 속의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 위상도 크게 상승했다. 글로벌 창업 생태계 분석 업체 스타트업 지놈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이 세계 270개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처음으로 20위에 올랐다.
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협회(GER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기업가정신 지수도 세계 44개국 가운데 9위로 뛰어올랐다. 창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개선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가정신이야말로 벤처 창업의 원동력인 만큼 매우 의미 있는 수치다.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도 13개사로 늘어 세계 5위가 됐다. 벤처투자와 벤처펀드 증가에 힘입어 2018년 이후로만 8개의 유니콘 기업이 새롭게 탄생했다. 초기창업기업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조합 결성액도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벤처 창업 열풍이 다시 불기까지 그동안 민·관이 협력하는 등 노력을 많이 했다. 2000년대 초·중반 황폐해진 벤처 생태계에 '창업'의 씨앗을 꾸준히 심어 창업기업이 두 배로 증가했다. 창업기업의 5년 후 생존율도 10개 가운데 3개꼴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이 성과를 내면서 2010년대 중반부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역이자 일자리 창출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어떤 기업군보다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 능력으로 빛을 발한 덕에 벤처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모처럼 도래한 제2 벤처 붐을 꺼뜨리지 않고 지속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싹을 틔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1000억원 벤처기업으로, 나아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민간이 주도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
먼저 스케일업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에선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니콘과 데카콘(기업 가치 10조원 이상)이 나올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작은 내수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에서도 선후배 벤처인들이 사업화 및 기술 지원, 해외 파트너 발굴과 협력 등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협회에서도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신산업에 대한 규제 혁신도 중요하다. 최근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이 확산하면서 신산업 출현이 가속되고 있고, 관련 산업과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과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업 간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간에서 자율적인 규제가 형성되고 자정 작용이 이뤄지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민간자본의 벤처투자 활성화가 뒤따라야 한다. 기업이 커지려면 투자 규모도 커져야 하는데 우리나라 벤처투자는 펀드 규모나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 평균 금액이 미국·중국에 비해 소규모다. 민간자본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도록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정책 및 활성화, 인수합병(M&A) 중심의 회수시장 활성화, 민간 벤처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창업 초기 이후에도 성장단계별로 적기에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펀드 다양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과거 청년들이 앞다퉈 창업에 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에 열정과 희망이 가득했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창업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닷컴버블이 꺼지고 제1 벤처 붐이 가라앉으면서 기업가정신도 사그라들었다. 청년들도 창업 대신 안정적인 공기업과 대기업에 취업하는 길을 선호했다.
이제 도전과 창업으로 대표되는 기업가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벤처 열풍을 타고 청년들이 다시 창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2 벤처 붐은 민간 주도로 우수 인재들이 두려움 없이 창업에 뛰어들고, 실패하더라도 재차 도전할 수 있는 창업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포인트모바일 대표) sk@ko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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