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 대변에서 유전자 지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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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생물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일은 과학계 숙원이다. 멸종한 동물이나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현재 생물과 차이, 진화의 비밀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이를 위해 동물의 이빨, 뼈 등 다양한 시료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전역을 찾아 다닌다. 최근엔 대변도 귀중한 시료로 부상했다. 대변에서 추출한 DNA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얻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 알렉산다르 코스틱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고대 인간의 대변에 남은 미생물 DNA를 분석, 현대인과 비교해 얻은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북미 남서부 동굴 3곳에서 8건의 인분 시료 발굴했다. 방사성탄소(C-14) 연대측정 결과, 시료는 10~920년경 생성된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시료에서 유전물질을 분리해 DNA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총 498종의 미생물 게놈을 구축했다. 181종은 고대 인간의 장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것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다시 현대인으로부터 채취한 789개 시료의 미생물 DNA와 비교했다. 현대인의 시료는 도시, 원주민 부락 두 개의 군으로 구분했다.

비교 결과, 고대인의 장내 미생물이 훨씬 다양했다. 고대 미생물 61종은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종으로 현대인의 장에 있는 미생물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미생물은 현대인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나 고대인 미생물 군집에서는 모두 존재하기도 했다.

고대 미생물이 항생제 내성과 관련된 유전자를 적게 갖고, 장의 점액층을 약하게 만들어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단백질 생성 유전자 수도 적었다. 현대인 중 원주민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고대인과 훨씬 유사했다.

현대인의 식습관이 장내 미생물 군집을 약화하고 비만과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이 같은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고대인의 대변이 동굴 속에서 비상적으로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동굴의 습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대변이 굳은 형태로 잘 보존될 수 있었다.

대변을 통해 배출된 DNA를 직접 채취해 성과를 얻은 경우도 있다.

코펜하겐대 진화유전학자 에스케 윌러슬레브 교수 연구팀은 멕시코 북부 치키후이테 동굴의 토양과 퇴적물에서 채집한 DNA 조각을 통해 1만6000년 전 석기시대 곰의 유전자 지도를 재구성했다.

고대 생물의 유전자 분석은 이빨이나 뼈 등에 구멍을 뚫어 유전물질을 채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구팀은 이와 달리 토양에 남은 동물의 DNA를 얻었다. 동물이 대소변을 볼때 배출된 세포 내 DNA가 토양에서 분해되지 않고 수천년간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DNA의 성분은 핵산이다. 핵산은 뉴클레오타이드라는 화합물로 구성된 고분자 물질이다. 동물 유해나 나뭇잎이 완전해 부패한 토양에서도 잘 보존된 형태의 DNA 조각이 검출된다.

연구는 DNA 조각으로 유전자 지도를 재구성한 최초의 성과라고 연구팀은 소개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