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일본은 미국 해군의 주력함대가 포진한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당시 해전은 큰 전함에 큰 대포를 장착해서 포격하는 거함거포(巨艦巨砲) 전술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서 6000㎞ 떨어진 진주만까지 전함을 동원할 수 없었다. 항공모함 6대에 폭격기 400대를 탑재하고 출항했다. 하와이 북쪽 해상에 정박하고 폭격기를 이륙시켰다. 적군의 폭격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내 땅에 달려든다면 그 두려움과 참담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유튜브 등 글로벌 OTT(Over the Top) 미디어의 국내 시장 진출을 보면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과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고성능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항공모함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콘텐츠 기획·생산·편집과 공급을 하고 있다.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우선 2020년 우리나라 방송 산업, 인터넷이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방송시장 규모는 17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지만 2010년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개인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전년 대비 한 주에 2.7시간 증가했다. 실내 인터넷 이용은 전년 대비 20.7% 늘었고, 동영상서비스 이용률은 전년 대비 11.5% 증가했다. 무게중심은 지상파·케이블TV·IPTV의 칸막이형 플랫폼에서 인터넷 기반의 OTT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글로벌 미디어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국내 미디어 기업의 반격은 눈물겹다. 1만원 안팎의 저렴한 요금을 바탕으로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티빙, 푹, 호핀 등 OTT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과 '기생충' '미나리' '대장금'으로 대변되는 K-팝, K-드라마, K-웹툰 등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성과도 돋보인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기업은 국민의 미디어·콘텐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 OTT 등 미디어 산업 육성과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효과적인 산업진흥·규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은 어떤가. 정부 조직은 플랫폼별로 별도의 규제를 하는 과거 미디어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 보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유료방송,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방송·종편 금지행위,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규제로 각각 나뉘는 등 산업진흥과 행위·공정경쟁 규제가 뒤죽박죽이다. OTT 등 새로운 유형의 미디어가 나올 때마다 서로 자기 관할임을 주장하는 등 혼란스럽다. AI를 활용한 미디어 생산, 1인 미디어 증가, TV 등 기존 미디어 약세 및 OTT 약진 등 새로운 미디어 상황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관련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최근에는 주요 부처가 OTT 등 온라인 콘텐츠와 커머스 시장을 둘러싸고 온라인플랫폼 이용자 보호법,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법 등 제각기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협의체를 둔다고 하지만 권한에 관한 사항은 쉽게 조율될 수 없다. 임진왜란 초기에 우리 수군은 대포를 탑재한 우수한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일본에 패했다. 진관체제라는 지역 중심의 독자방어 체제를 고수하는 바람에 모든 전함을 일사불란하게 활용하는 총체적인 전술을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미디어 전쟁에서 같은 실수를 범할까 걱정이다.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열리기 전에 규제를 들고나오는 것도 문제다. 외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며 우리 기업의 발목부터 잡는다. 산업진흥정책과 시장규제정책이 혼란스러우면 다치는 것은 기업과 국민이다. OTT 플랫폼은 업종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복잡·다양한 사업 규제를 효과적으로 정리해야 성장할 수 있다. 미디어 산업과 시장의 흐름에 맞게 정부 조직 및 역할을 고쳐야 한다.
글로벌 기업의 항공모함 편대가 한국을 공습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미디어·콘텐츠에 관한 정책 컨트롤타워와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 시스템이 지금 당장 필요한 이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