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이달 5일 LG전자가 이사회를 열고 휴대폰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화통'으로 첫발을 뗀 26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때 판매 대수 기준으로 세계 점유율 3위까지 찍었던 LG 휴대폰의 씁쓸한 퇴장이다. 이틀 뒤인 7일 열린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박빙 승부를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서울 16%, 부산 더블스코어 차이로 국민의힘 압승이었다. 180석을 자랑하던 여당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불과 1년 전 총선을 싹쓸이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제와 정치판을 후끈 달군 사건이다. 연관성은 없다. 다른 공간, 다른 분야, 다른 시간대에서 벌어진 LG사업과 보궐선거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현상은 다르지만 본질이 맞닿아 있다면 과장일까. 사안을 추적하면 만나는 지점이 있다. 결과보다 배경을 곱씹어보면 흥미롭다. LG가 단순히 '23분기 적자'라는 이유로 휴대폰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당도 최근 불거진 'LH 비리' 한방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 '결정타'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훨씬 복잡하다.

'대마불사' LG 휴대폰이 퇴장한 진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타이밍을 놓쳤다. '실기'했다. 피처폰에 강했던 LG전자는 스마트폰에 시큰둥했다. 삼성과 LG 모두 스마트폰 초기 대응이 늦었지만 불행히 LG는 삼성보다 더 안이했다. 실기는 오판으로 이어졌다. 도리어 프리미엄 피처폰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갔다. 전략적인 방향도 우왕좌왕했다. 안드로이드에 집중한 삼성과 달리 윈도폰 출시에 무게를 뒀다가 늦어지자 안드로이드와 윈도폰 사이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결과적으로 손절할 시점을 놓쳤다.

두 번째는 과거에 안주했다. 짜릿한 성공에 도취돼 '자만'했다. LG는 피처폰 시대에 맹주까지는 아니었지만 황금기를 누렸다. LG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 초콜릿폰을 시작으로 샤인폰 등 1000만대 이상 팔리는 '텐밀리언폰'을 연이어 내놓았다. 연간 판매량 1억대를 넘기며 2009년에는 모토로라를 제치고 노키아와 삼성에 이은 '톱3'에 올랐다. 밖에서는 '아이폰 쓰나미'가 몰려오지만 과거의 영광은 훨씬 달콤했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읽지 못했다. '둔감'했다. 소비자 입맛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휴대폰 시장의 대분기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이었다. 스마트폰은 피처폰 당시부터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통신망과 서비스 방식을 비롯한 시기와 기반이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2007년 아이폰이 혁신 방아쇠를 당겼다. 시장은 뒤집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LG는 시장흐름과 소비자 수요에 무덤덤했다.

다시 선거판으로 돌아와 보자. 민주당 참패 이유도 대동소이하다. LG가 휴대폰을 접어야 했던 키워드 몇 개만 바꾸면 딱 들어맞는다. 국민에게 반성할 때를 놓쳐 '실기'했고 180석이라는 영광에 취해 내로남불, 입법폭주라는 비난이 빗발칠 정도로 '자만'한 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막판까지 '민심'을 읽어내지 못하는 과오가 지금 사태까지 이어진 것이다. 다른 점도 있다. LG는 휴대폰을 포기했지만 기술과 특허를 남겼고 무엇보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인재를 키워 놓았다. 그래서 사업을 접었을 때 반응은 “아~”하는 아쉬움이었다. 정치는 무엇을 남겼을까.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국민의힘 신승에 “오!”하는 감탄사가 전부였다. 짜릿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래도 정치판에서는 늘 국가와 국민을 부르짖는다. 누가 더 대한민국을 위해 뛰고 있을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