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기차 충전시장 플레이어는 크게 정부·공기업(환경부·한국전력)과 민간기업 두 부류다. 전세계 유일하게 민간과 정부·공기업이 불특정 다수 전기차 이용자를 상대로 경쟁하는 구조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시장 초기 충전시설에 대한 투자비 부담을 덜기 위해 2013·2014년부터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한국전력공사)를 통해 전국에 충전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 수와 충전시설이 점차 확대되면서 정부·공기업이 시장논리를 해치고 있다. 정부·공기업이 전국에 운영 중인 충전시설 계약 전력용량은 민간보다 두 배 이상 많을 정도로 시장지배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 업계는 정부의 충전요금 정책에 끌려갈 수밖에 없고, 고속도로 휴게소 등 시설 접근성이 좋은 부지는 정부·공기업이 이미 선점한 상태다. 여기에 국내 전력판매 독점사업자인 한전이 민간 충전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충전용 도매 전기요금과 한전불입금 등 과금 권한까지 쥐고 있다. 한전은 전국 모든 충전시설의 전기사용량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민간 업체와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는 민간주도형 자생적 시장 창출을 위해 환경부와 한전의 충전사업을 하루빨리 제한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운영 중인 완·급속충전기 중에 급속충전기(50·100㎾급) 경우 환경부(4226기), 한전(3644기)이 민간 업계 충전기(2186기)보다 크게 많았다. 반면에 급속충전기에 비해 가격이 10%도 안 되는 완속충전기(7㎾)는 민간업계가 2만2818기로 정부·공기업(5473기)보다 크게 많았다. 급속충전기는 정부·공기업 합친 수가 민간보다 세 배 이상, 완속은 민간이 정부·공기업보다 네 배 이상 많이 운영하는 상황이다.
이를 근거로 환경부·한전이 시설 운영을 위해 한전과 맺은 설비 계약용량(급속 50㎾·완속7㎾ 기준)을 따지면 환경부·한전은 50만㎾에 육박한다. 민간업계 전체 계약용량(약 26만㎾)보다 거의 두 배가량 많은 수치다.
단순하게 충전기 숫자만을 따지면 민간 충전기가 많지만, 충전시설의 전력사용량은 정부·공기업이 압도적으로 높은 셈이다.
충전업계 한 대표는 “국가 전력판매 독점사업자가 충전 분야에서 도매업과 소매업을 병행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환경부와 한전은 공익적으로 시설을 운영하지만, 민간 기업은 수익을 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수요가 20만대를 향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정부와 공기업 참여를 제한해 민간 주도의 자생적 시장을 만들어야 할 때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정부 방침에 따라 충전 수요가 많지 않아 민간 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아파트단지, 한전 전국 영업소나 국가시설 등을 위주로 충전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민간 업체들이 주로 진출한 대형유통점 등 생활시설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환경부는 당초 2022년에 전국 충전소를 민간에 이양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다시 이양 시점을 2025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환경부는 연내 '공공부문 충전기 구축·운영사업 전환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표】사업자(기관) 별 전기차 충전기 운영 현황(2021년 2월 기준, 자료 각사)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