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문자가 하루에 몇 건씩 쏟아진 적이 있었다. 처음엔 놀란 가슴으로 보았는데 너무 흔해지다 보니 이젠 아예 알람 기능을 꺼 놓기도 한다. 게다가 긴급문자를 보더라도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저 마음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자로 보내는 확진자의 동선 정보는 홈페이지나 공공정보 개방 사이트에 올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어려운 해당 가게들이 소독과 방역을 다시 해도 영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좋은가.
경기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정희 서울대 교수와 확진자 동선 알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시험하고 있다. 이달 말께 본격 서비스할 예정이다. 앱을 설치하고 위치정보를 허락해두면 확진자가 다녀간 곳과 겹치는지 비교해서 알려준다. 자신의 위치정보는 암호화되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은 없다. 암호화돼도 비교 가능한 동형암호 기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미리 준비할 것이 있다.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데이터화하는 일이다. 그동안 역학 조사관들은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했다. 예를 들면 사당동 '친척집-수원 매교동 음식점-고등동 학교' 이런 식이다. 이렇게 만든 문서 파일을 질병관리청에 업로드한다.
경기도는 이것을 바꿨다. 데이터베이스(DB) 입력화면을 만들고, 데이터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아래한글 보고서가 만들어지게 했다. 질병관리청이 요구하는 보고서 형식 파일은 보내주되 경기도에는 데이터가 남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바쁜 역학 조사관들을 위해 지도에서 위치를 선택하면 주소가 자동으로 입력되는 기능도 넣었다. 이렇게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심층역학조사서 DB'를 구축했다.
그러나 경기도만의 DB로는 한계가 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시대에는 지역 단위가 아니라 전국 규모의 동선 파악이 필요하다. '심층역학조사서 DB'를 전국 단위로 통합하고, 이 데이터를 읽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서비스(API)해야 한다. 사용자는 이 정보를 참조해 자기와 겹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굳이 모든 사람에게 안내문자를 보낼 필요가 없다. 2주 이상 지난 확진자 동선 데이터는 자동으로 DB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아주 오래된 확진자 정보로 손해를 보는 상점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경기도는 경기 북부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남하를 사력을 다해 막고 있다. 사육용 돼지는 파악되기 때문에 관리되고 있지만 문제는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모르는 멧돼지다. 이 때문에 2019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포획되거나 사체로 발견된 멧돼지 2만건, 사육용 돼지 150만마리의 현황을 모두 데이터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2020년 상반기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경기 북서부에서 북동부로 동진하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후 강원도 쪽으로 넘어간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개체들은 남하하기 시작했고, 2020년 11월에는 강원도 양양과 영월이 발생 위험이 큰 새로운 곳으로 예측됐다. 그런데 실제로 12월에 이곳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새로이 발생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환경부가 멧돼지의 사체 발견과 포획 장소 데이터를 초기의 '○○군 ○○면 ○○리' 식에서 위성항법장치(GPS) 위치정보로 바꿨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바뀌자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이 가능했고,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리해 보자. 첫째 기계가 데이터를 읽게 하자. 그러려면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분석과 예측이 가능해지고, 기계가 사람을 도울 것이다. 둘째 조직을 넘어 데이터를 통합해서 활용할 수 있게 하자.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분석도 경기도와 강원도가 관련 데이터를 서로 협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신과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할 또 다른 힘은 데이터이다. 질병관리청과 지방정부, 정보화 기관이 함께 데이터 활용 협약을 맺고 방역 전선에서 전국 데이터의 힘을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임문영 경기도 미래성장정책관 seerl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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