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실적 부진에 '재원 확보' 한계
온라인 투자 위해 현금 유출 최소화
대주주 국민연금 압박에도 불가피
배당금 마련에는 사내 유보금 쓸 듯
유통 대기업인 롯데쇼핑과 신세계가 지난해 결산 배당금을 축소했다.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배당 확대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배당금을 늘려왔지만 작년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재원 확보가 한계에 부딪혔다. 또 유통 경쟁이 심화되면서 투자를 위해 현금 보유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작년 결산 배당금을 1주당 3800원에서 2800원으로 줄였다. 배당금 총액도 791억5780만원으로 26.3% 줄었다. 신세계도 배당금은 주당 2000원에서 1500원으로 축소했다. 총 배당금도 197억7281억원에서 147억5461만원으로 25% 감소했다.
국민연금공단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며 저배당 정책을 펼쳐온 유통업계에 배당 확대를 요구해왔다. 국민연금은 롯데쇼핑과 신세계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다. 작년 3분기 기준 국민연금 롯데쇼핑 지분 5.09%와 신세계 지분 13.31%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지분 보유목적은 단순투자가 아닌 '일반투자'로 주주 제안과 의결권 행사 등에 적극 관여하는 형태다. 양사는 국민연금을 의식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배당성향을 높여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배당 규모를 줄인 것은 극심한 실적 부진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670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 4년간 누적된 순손실만 2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도 19.1% 줄어든 3460억원에 그쳤다. 신세계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이 81.0% 급감했고 당기순손실 61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신세계가 연간 기준 순손실로 전환한 것은 지난 2011년 이마트와 법인 분리 이후 처음이다.
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배당금 마련도 쉽지 않다. 순이익이 없어 배당금을 사내유보금(미처분 이익잉여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 롯데와 신세계 모두 배당 재원을 사내유보금에서 벌충할 것으로 보인다. 배당 규모가 커지면 투자금도 줄어든다. 온라인 등 경쟁이 심화된 유통시장에서 사업 체질 개선을 위한 공격적 투자가 필요한 만큼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겠다는 판단이다.
양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순손실 규모가 늘어난 악조건 속에서도 주주친화정책을 의식해 최소한의 배당성향은 유지했다. 롯데쇼핑 배당금 총액은 줄였지만 시가배당률(보통주 1주당 배당금이 주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과 같은 2.8%를 유지했다. 신세계도 시가배당률이 2019년 0.7%에서 작년 0.6%로 0.1%포인트(P) 감소하는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유통기업이 적자에도 배당을 실시한 것은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국민연금의 배당 압박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다만 유통 경쟁이 심화되고 적자 규모마저 커지면서 몇 년간 이어온 배당 확대 기조가 한풀 꺾였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