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으뜸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사업' 예산이 700억원 수준으로 확정됐다. 전체 규모는 지난해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가전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정책 예산이 대폭 줄어들자 가전상품 내수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으뜸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사업은 지난 2019년 8월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으로 시행됐다. 고효율 가전 보급을 늘리기 위해 해당 제품을 사면 구입하는 데 들어간 비용의 10%를 정부가 환급하는 제도다. 개인당 20만원 한도로 4인 가족이면 최대 80만원까지 구매 비용을 돌려받았다.
같은 해 11월 1일~12월 31일 환급 예정 기간을 잡았지만 재원이 일찍 바닥나면서 12월 12일 소진됐다. 당시 예산은 240억원으로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공기청정기, 냉온수기, 제습기, 에어컨 등 7종이었다.
첫해 환급 신청 건수는 총 19만6031건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김치냉장고가 전체의 63.4%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전기밥솥(18.7%), 냉장고(13.3%), 공기청정기(1.5%), 냉온수기(1.3%), 제습기(1.0%), 에어컨(0.7%)이 이었다.
2020년에도 코로나19로 위축된 가전 유통시장에 단비 역할을 했다. 예산도 상반기에만 전년보다 6배 이상 늘어난 1500억원으로 확대했고, 개인별 환급 한도도 30만원으로 늘렸다. 하반기에는 추경안이 확정되면서 1500억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유통업체는 의류건조기, 김치냉장고, 세탁기, TV 등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가전 매출이 평균 20% 이상 증가했다. 수요가 몰리면서 3월 23일~9월 4일 시행되는 동안 3000억원의 재원이 모두 바닥났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비가 집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 구입에 집중됐다. e커머스 매출이 늘어나고, 배달 수요도 폭증했다. '집콕' 생활에 필요한 영상가전과 주방가전 소비도 늘어나면서 가전 구매 대금의 10%를 돌려주는 으뜸가전 환급 사업은 소비 촉진에 큰 몫을 했다.
마스크 착용하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보건 방역 역할을 했다면 으뜸가전 환급사업을 비롯한 재난지원금, 대한민국 동행세일은 식어 가는 내수에 불씨를 살린 경제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환급 제도도 내용은 비슷하다. 환급은 구매 비용의 10% 수준에서 최대 30만원을 환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달라진 것은 예산 규모와 대상이다. 지난해에 비해 4분의 1토막 났다. 700억원 수준으로 편성됐다. 사업 대상도 전 국민 대상에서 전기요금 복지할인 가구로만 한정했다.
내수 진작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의 가구는 구매력이 약해서 가격이 비싼 고효율 가전을 구매하기엔 부담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추경예산 편성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백신이 들어오고 오는 3분기부터는 전 국민이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제약회사도 치료제를 곧 상용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내년에는 마스크가 얼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또다시 생필품 구매 목록 1순위를 차지하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위드 코로나'든 '포스트 코로나'든 내수 활성화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과 예산은 필요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서 효과가 크다. 효과가 큰 곳은 소비자와 시장이 안다. 물론 정부도 알고 있다.
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