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급속한 산업화 덕분으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환경오염, 기후변화, 신·변종 전염병 등 많은 난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전세계 18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과거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딥 체인지(Deep Change) 시대를 살고 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미래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과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 국제연합(UN)은 이러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표현한다. 지금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우리 후손들이 누려야 할 자원을 무분별하게 당겨쓰거나 훼손하지 말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해가야 한다는 의미다. 2015년 제70차 UN총회에서 기아극복, 식량안보, 건강한 삶, 깨끗한 물과 환경 등 2030년까지 달성할 17개 목표를 담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채택됐다. 인류 모두가 지키고 가꿔야 할 공유가치라고 할 수 있다.

SDGs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 수단 중 UN은 특히 과학기술혁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대부분 SDGs 달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우리는 과학기술의 혁신이 글로벌 난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mRNA 백신으로 대변되는 첨단 백신 플랫폼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 덕에 10년 이상 걸리던 백신개발을 10개월로 단축할 수 있었다. 바이오 기술은 감염병 뿐만 아니라 17가지 SDGs 중 11개 목표 달성에 핵심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바이오 분야 유일한 국책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국제사회 한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R&R) 재정립을 통해 인류 공통목표인 SDGs 이행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 첫번째로 인류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유전자 가위, 마이크로바이옴 등 첨단 바이오 핵심기술과 바이오 빅데이터 기반 맞춤의료, 줄기세포 이용 재생의료 등 첨단바이오의약품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 지속가능한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합성생물학을 이용한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바이오소재 개발 기술과 그의 산업화를 위한 바이오파운드리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 고령화 대비 노화제어 기술개발과 신·변종 바이러스 감염병 문제 해결을 위한 원천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미세 플라스틱이나 미세먼지로부터 국민 안전과 생태계를 보호하고 온실가스 저감,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변화 대응기술 개발을 선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 맞춤형 혁신성장 프로그램 및 국내외 바이오인프라 지원으로 바이오 생태계를 육성하는 등 바이오산업 혁신을 주도하고 있으며 권역별 산·학·연 연계 바이오기술(BT) 클러스터 핵심기능 및 지역현안 연구개발(R&D) 기획 추진으로 국가 균형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기업들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유가치 창출을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채택하듯이, 국책연구기관으로써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지구와 인류 미래를 위한, 공공 이익에 기여하기 위한 공유가치를 실천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미래세대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가치체계를 세웠다고 그 목표가 저절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연구자들뿐 아니라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며 단기적 목표에 매몰되는 일 없이 장기·안정적인 연구 개발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성실 실패를 용인하는 등 도전적인 R&D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특별법 시행령이 연구현장에 잘 착근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와 함께 R&D 주체인 산학연병 역할 분담과 유기적 협력, 글로벌 차원 네트워크 구축 등 각계 각층 역할과 책임 그리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과학은 객관적, 보편적이지만 과학자는 서로 다른 자연적, 문화적 환경에 속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경험한 문제뿐 아니라 처음 경험하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선진국을 따라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담보하지 않는다. 알려진 문제를 경쟁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문제들을 발견하고 우리 방식대로 올바른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류 공통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jangskim@kirb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