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급등하면서 정부도 덩달아 신났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에선 유니콘과 벤처기업이 코스닥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며 고무돼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제2 벤처 붐'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러난 성과도 나쁘지 않다.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가운데 코스피 4개사, 코스닥 13개사가 벤처기업이다.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갸우뚱하다. 대기업 계열사인 SK머티리얼즈, 카카오게임즈도 벤처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지난 2005년 과거 SK그룹·OCI가 최대주주가 되기 이전인 소디프신소재 시절에 받은 벤처인증이 기록에 남아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회사 전신인 엔진이 다음게임과 합병 이전에 받은 이력으로 벤처기업 명단에 올라 있다.
엔씨소프트, 카카오, 네이버, 셀트리온 등 시가총액 상위에 이름을 올린 기업 역시 벤처기업 확인을 받은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사업 규모가 이미 대기업 수준을 뛰어넘었지만 벤처기업이 거둔 성과로 포장되고 있다.
유니콘 역시 마찬가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게임즈는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고 코스닥이 1000을 바라보는 지금도 시장 시초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굳이 벤처기업의 성과를 보이기 위해 확인받은 지 10년이나 지난 기업의 성과까지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알테오젠, 펄어비스, 제넥신, 메드팩토 등 지금도 벤처기업 자격을 유지하며 코스닥 상위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펄어비스는 코스닥 상장 이전부터 1조원 상당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은 원조 유니콘 기업이다. 2017년 기업공개(IPO) 당시 공모가 거품 논란에 휩싸이며 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낮게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3조4000억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주가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창업 생태계에서 '벤처'라는 명칭은 이제 다소 낡은 단어로 여겨진다. 정부가 과거에 얽매인 채 성과를 알리고자 할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다.
다음 달부터 시행될 민간 주도 벤처확인제도는 새로운 접근에 나설 절호의 기회다. 최근 경향을 반영해 벤처기업의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