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주던 돈을 갑자기 안 주면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잘사는 형제가 명절 때마다 형제들에게 오느라 수고했다고 용돈을 주다가 갑자기 안 주면 그동안 고마운 건 잊고 왜 안 주냐고 따지고 서운해 한다는 것이다. 항상 받던 사람들은 제가 결혼하더니 변했다, 회사가 안 좋나 등 분위기를 나쁜 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지 말라는 얘기까지 있다. 정기적으로 받는 물질에는 감사하는 마음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배운 내용이어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외국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매일 아침 동네를 돌며 10달러씩을 줬더니 처음에는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갑자기 돈을 주지 않고 지났더니 왜 돈을 안 주느냐고 따지고 들더라는 얘기다.
이런 사례가 개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전기자동차 보조금 논란을 두고 불거지고 있는 논란도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지난해 기준 전기자동차 보조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합쳐 약 1500만원 지급했다. 수소차량의 경우 모델도 한정돼 있고 판매 대수도 아직 크지 않기는 하지만 대당 약 3000만원에 달했다.
이런 보조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회사는 테슬라다.
테슬라가 2020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1만1826대를 판매했다. 모델3는 국산차와 수입차 통틀어 지난해 한국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차로 등극했다.
신규 등록 기준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성장률은 386.7%에 달했다. 지난해 국내 진출한 전체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8위권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테슬라 모델의 주력인 모델3는 1만1003대나 소비자에게 인도됐다. 전년 대비 5배 이상 급증한 숫자다. 지난해 지급된 정부 보조금만 7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테슬라뿐만 아니라 국내 전기자동차는 총 4만6000대(화물차 포함)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걸음마 단계는 벗어났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에서도 올해부터 정부가 보조금 지급 기준을 조정하기로 했다. 차량 가격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게 골자다. 한정된 재원으로 인한 가장 효율적 방안을 찾은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6000만~9000만원은 50%만 지급하고 9000만원 이상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정부 보조금도 전체적으로 소폭 감소한다.
이런 정책변화에 테슬라가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산차를 밀어 주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테슬라의 반발은 이율배반적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는 이미 차량 가격이나 주행거리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중국도 전기자동차 보조금 정책을 조정했다. 이에 테슬라는 지난해 상반기 중국에서 변화된 정책대로 보조금을 받기 위해 모델3 가격을 약 500만원 인하했다. 국내 소비자가 중국 소비자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얘기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정책 변경으로 줄어드는 정부 보조금(지자체 제외)은 400만원이 넘지 않는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고가의 전기자동차 가격을 고려할 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에서의 가격 조정이 이를 증명한다.
보조금은 특정 자동차 제조사가 가격을 맞춰 주는 눈먼 돈이 아니다. 친환경차 보급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라는 목적이 있다. 보급 대수가 늘고, 상황이 변화됐다면 정책 목표에 맞춰 조정하는 게 당연하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