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도 상승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없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지난 136년 동안 가장 뜨겁던 18년 가운데 17년은 2001년 이후였다. 북극 온도는 1980년 이후 2도 이상 상승했다. 상승 추세는 해가 거듭될수록 가속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후변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기 때문에 인류는 새 생태계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기후변화 이슈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기 때문에 주요 경제 대국들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다양하게 이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동참하고 있다. 파리협약은 탄소 시장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을 적극 옹호한다. 탄소 비용을 시장 가격에 반영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합당하게 줄여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저탄소 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는 취지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이와 같은 시장 메커니즘 대표 정책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시장답지 않게 운영됐다. 배출권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가격 신호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가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의 제도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해외는 배출권 비용 일부가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도 상승하고 배출권 비용이 하락하면 전기요금도 하락한다. 물론 배출권 비용이 모두 다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 탄력성에 따라 시기별·시간대별 반영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대체로 계통부하가 높으면 배출권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범위도 넓다. 계통부하가 낮으면 수요탄력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반영 정도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이처럼 탄소 가격이 시장에서 작동될 때 소비자는 가격 신호를 보고 전력 소비를 조절하고자 하는 동기가 된다.
최근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확정된 기후·환경 비용을 별도로 분리해서 고지하는 방침이 주목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이고 동참을 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으로 배출권 비용이 ㎾h당 0.5원만큼 별도로 고지된다고 하지만 소비자 전기요금이 실제로 인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발전 부문이 부담해 온 배출권 비용을 명시하는 것뿐이다. 아직 전기소매 요금 규제를 받는 우리나라 전력 시장 구조 아래에서는 EU나 미국처럼 배출권 가격과 실시간으로 연계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후 비용이 고지되면 기후변화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향후 실시간 전력 시장으로 개편될 때 배출권 거래 시장과도 좀 더 쉽게 연계될 수 있다. 물론 여러 도전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배출권거래제에서의 간접 배출 이슈, 전력 시장에서 실시간 현물거래와 장기 선도거래 도입, 정산조정계수 등도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한다.
우리 시민사회는 기업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요구하고 있다. 환경, 사회, 거버넌스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가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재난도 곳곳에서 가시화되는 와중에 이제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말이나 관념으로만 기후변화를 우려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동참한다는 우리 인식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기후환경 비용을 우리가 매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확인해 본다는 것은 그러한 인식 변화의 첫걸음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hjeong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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