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디지털 정부 전환 작업이 본격화된다. 주요 부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노후 장비 교체 및 신규 도입 등에 클라우드를 우선 고려한다. 지난해에 이어 공공 대형 차세대 사업이 예고됐다.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위축된 민간 시장을 대신해 줄 공공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디지털 정부 사업이 과거를 답습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공공 정보기술(IT) 사업의 고질병이 된 문제는 사업 예산 부족이다. 지난해 추진된 공공 대형 IT 사업이 대부분 애초 계획보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 줄어든 금액으로 발주됐다. 예산은 줄었지만 해야 할 일은 그대로다. 이로 인한 부담은 사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구조다. 그런데도 공공은 여전히 2000년 초반 전자정부 구축 시절을 떠올린다. 모 부처 공무원은 “공공 IT 사업은 제대로 된 예산을 받기 어려우니 대기업이 일정 부분 희생하며 예전처럼 공공 서비스를 함께 개발하면 되지 않으냐”고 얘기한다.
대기업 하나의 희생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수십, 수백개 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적은 예산으로 개발된 시스템에 부실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세금은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맞게 제대로 집행돼야 한다. 디지털 정부 사업은 예산을 아끼지 않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개발한 부처 또는 공공을 치하하는 방향으로 배정돼야 한다. 그래야 품질 높은 디지털 정부 기반을 마련하고 건강한 SW 산업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국산 SW 도입에 인색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 SW업계는 지난 20년 동안 외산 공세 속에서도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아 왔다. 주요 국산 SW는 해외에서 인정하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SW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우리나라 SW를 채택한다. 미국 대표 IT 기업 시스코는 우리나라 SW 기업 엔쓰리엔의 제품으로 미국 내 스마트시티를 구현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 분야가 국산 SW업계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외산 선호 분위기는 여전하다. 업계는 무조건 국산 도입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산과 외산 SW가 벤치마크테스트(BMT) 등 기술력을 비교할 수 있는 공정 경쟁 환경만이라도 제공해 달라는 입장이다. 최근 민간 기업도 BMT를 거쳐 기술, 가격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국산 SW를 도입하는 분위기다.
국산이 BMT 등 외산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면 국산 도입에 무게를 둬야 한다. 특히 디지털 정부를 구축하는 현시점에서 국산 도입 고려는 필수다. 우리는 이미 20년 전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전자정부가 세계 1위 수준에 올라서면서 여러 국가에 시스템을 수출했지만 SW 없이 껍데기만 수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디지털 정부가 전자정부처럼 수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 국산 솔루션이 함께 도입돼야 의미가 크다. 국산 SW업계가 해외로 뻗어 나가는데 디지털 정부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전자정부는 지난해 디지털 정부로 이름을 바꿨다. 디지털 정부 사업은 20년 만에 다시 공공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길 사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디지털 정부 사업을 탄탄하게 뒷받침할 SW산업법도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다. 남은 과제는 실행력이다. 디지털 정부를 이끄는 공공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무겁다. 올해 디지털 정부 사업은 지난 20년 동안의 해묵은 산업 체계와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