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터보차저, ABS,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헤드업 디스플레이'.
이들 자동차 부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항공기에 먼저 탑재된 부품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까지 항공기에는 유리 덮개가 따로 없어 비행기가 뒤집히면 조종사가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11년 미국 비행장교인 벤자민 파울루아(Benjamin Foulois)가 처음 안전벨트를 장착하고, 이후 독일인 칼 고타(Karl Gothaer)가 허리쪽을 양옆으로 고정하는 항공기의 2점식 안전벨트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는 1950년대부터 2점식 안전벨트가 옵션으로 적용됐는데, 현재 차량에서 사용 중인 어깨까지 고정할 수 있는 3점식 안전벨트는 1959년 볼보에서 처음 개발됐다.
차량의 여러 정보를 내부 전면 유리쪽에 비추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군용 항공기에서 먼저 사용된 기술이다. 조종사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전면에 그대로 투사함으로써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게 만들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7~2019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졸음운전을 하거나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초보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다가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하면 주행 경로, 도로 교통표지판 정보 등을 전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생길 수 있는 사고 가능성을 낮춰준다.
이처럼 항공 기술들이 자동차에 적용되며 자동차 기술의 발전과 승객의 안전에 도움을 준 것은 명백하다. 자동차의 미래를 보려면 항공 기술을 살펴보라는 말도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앞서 살펴본 기술처럼 현재 사용 중인 항공 기술이 미래 자율주행차의 기술로 발전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먼저 현재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 기술이라 불리는 레이더 및 센서 등의 기술은 항공기에서 먼저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오토 파일럿'이라 불리는 자동항법기술은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일정한 비행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자율주행 기술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자동항법기술은 조종사의 운항을 보조해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오토 파일럿 기술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기술 자체가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없다. 난기류를 만나거나 예상되어 경로를 변경해야 할 때 조종사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항공 기술도 완전자율운항 시스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율주행 부문에서는 자동차의 적용 속도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최종 단계인 '레벨5'로 가기 위해서는 오토 파일럿 기능 이상을 구현할 기술과 통신 등 관련 인프라가 필요하다.
최근 자동차 및 IT 업계가 완전자율주행 시대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자율주행시스템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자율주행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인지-판단(분석)-제어' 개념의 로직으로 구성되는데 이 같은 자율주행 프로세스는 한 치의 오차 없는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관련 기업들은 센서 퓨전, 고정밀 맵, 통합 제어기와 같은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치열한 기술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자동차 업계는 항공 업계의 고유 영역인 하늘 길도 넘보고 있다. 지난 1월 현대차그룹은 'CES 2020'에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의 청사진을 선보인 바 있다. 세계 최대 모빌리티 전문 회사인 우버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23년 개인용 비행체 'S-A1'을 미국에서 시범 운항할 계획이다. 국내 UAM 사업은 현대차그룹에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로 해외에서는 일본 토요타, 독일 다임러 등이 UAM 상용화에 적극 투자 중이다. 향후에는 자동차 기술로부터 탄생된 비행 기술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