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자와 업계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이야기는 '사이버펑크2077'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올해 최대 기대작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밋밋한 전투와 낮은 자유도, 상호작용, 어처구니없는 버그가 속출했다. 기대감만큼이나 실망감이 컸다. '노 맨즈 스카이'가 겹쳐 보였다. 오히려 같은 날 출시된 카카오게임즈 '엘리온'이 더 잘 만들고 더 잘 대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발사가 CD프로젝트레드여서 충격은 더 컸다. 폴란드 내방 시 국빈 선물로 주는 '위쳐' 개발사인 데다 강력한 사후 지원으로 게이머 사이에서 '갓'으로 추앙받던 곳이다.
그럼에도 사이버펑크2077은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개발기간, 기획, 출시 기대감 형성 등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게 많다. 사이버펑크2077에는 아쉬운 완성도와 별개로 출시 전 게이머 '겜성'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위닝일레븐' 20주년 광고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15주년 광고처럼 아련함을 자극하는 것 말고도 신규 지식재산권(IP)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사전 예약 몇 만!' 하면서 시네마틱 영상으로 도배된 요즘 세상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그런 겜성이었다. 게임 재미에는 감성 영역도 존재한다는 걸 일깨워 줬다.
사이버펑크2077 트레일러를 처음 봤을 때 '이 게임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라며 설렜다. 기다림마저 행복했다. '디아블로2' 출시 이전 게임 잡지에 실린 정보를 종이가 해어질 정도로 보고 또 본 이후 오랜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사전 다운로드가 완료돼 실행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설렘이 있었다. 행복한 감정을 느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게임과 연애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다만 연애는 끝난 뒤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기약 없이 인내해야 하겠지만 게임은 다르다. 언젠가는 패치가 나온다. 그러면 설레임과 행복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국내 게임사가 이 게임을 앞으로도 벤치마킹하고 분석하려 하는 것 같다. 국내에서도 게임 내용으로 겜성을 자극하는 시도가 성공해서 회자되는 걸 기대한다. 게임이 재미있으면 더 좋고.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